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135 #기술시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김은희
2024-04-16
조회수 894



얼마 전 초등학교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어 시간으로 그림책 이야기에 나오는 '못’에 대한 쓸모에 관하여 토론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쓸모가 없어진 벽에 걸려있는 못을 뽑아 버릴 수도 있었으나 밖의 벽으로 옮겨 화분 걸이를 하면서 쓸모가 생겼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못의 쓸모에 대한 초등학생들의 다양한 의견 중에 쓸모 없어진 못도 그냥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 아닙니까? 꼭 쓸모가 있어야만 못입니까? 하는 한 아이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수업을 들으며 인간의 쓸모에 대해서도 아이들이 같은 생각을 하길 바랐습니다. 아기일 때는 태어난 것만으로도 사랑받으며 아기의 쓸모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성장하여 학생이 되면 공부를 잘해야지, 성인이 되면 경제적 가치를 만들며 생산성을 지녀야만 가치가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일하다 나이가 들어 은퇴해도 스스로 더 이상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는 아이가 있어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육아에 전념하는 젊은 사람들도 스스로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들의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는 친절한 양육자가 되든지, 무슨 일에든 간섭하고 시시콜콜 잔소리하는 비평가가 되게 됩니다. 


경제 성장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곳 어디서든, 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된다. .... 우리는 자기 안의 재능을 볼 수 있는 눈을 잃었고, 그 재능을 발휘하도록 환경조건을 조절할 힘을 빼앗겼고, 외부의 도전과 내부의 불안을 이겨낼 자신감을 상실했다.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인간은 단순히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자 합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기계나 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인간의 가치와 쓸모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창의적인 일자리도 AI에 대체되며 현대화된 가난으로 불안감이 높아지는 상황에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쓸모없어지는 걸까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도 사라지는 걸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여한 쓸모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평가 절하하며 이유 모를 불안과 고독에 시달립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내적 가치와 의미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알겔루스 질레지우스의 ‘장미'처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장미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

그것은 피기 때문에 필 뿐이다.

장미는 그 자신에도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지도 묻지 않는다.

알겔루스 질레지우스





이번 호에는 문화예술사업 (사)와우컬처랩 이현진대표의 선정책과 추천사가 함께 실립니다. 
📚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 지음, 허택 옮김, 느린걸음, 2014

가난의 현대화

상품이 어느 한계점을 지나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면 사람은 무력해진다.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집을 지을 힘도 없게 되는 무기력이다. 땀을 흘려야 기쁨을 얻는 인간의 조건이 소수 부자만 누리는 사치스러운 특권이 된다. (p32)

20세기의 가장 급진적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현대사회를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전문가의 시대'라고 말한다. 전문가 우위의 사회가 나머지 사람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과도한 시장경제 의존에서 비롯된 '현대화된 가난'을 비판하고 전문가 중심의 사회가 가져올 민주주의의 위축을 우려한다. 전문가 사회의 미래인 '기술 전체 주의'를 경고하며 '쓸모 있는 실업의 권리'를 주장한다.  - 이현진 대표



 📚 『나는 동물』 홍은전 지음, 봄날의책, 2023

농업혁명의 일부로서 인간 진보의 핵심이라고 여겨졌던 가축화의 디테일을 아는 건 매우 중요하다. 차별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동물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 사회의 토대가 되고 자연적 질서로 인식되면서 어떤 폭력과 무자비함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면 동물뿐 아니라 인간까지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다루게 된다. 바로 인간 노예제이다. 노예제는 동물을 예속화하는 가축화가 인간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인간이 미개한 동물을 지배하는 게 마땅하듯 동물처럼 미개한 인간을 지배하는 것도 마땅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정복하고 싶은 인간들이 생기면 그들을 동물로 칭했다. (p229)

인권 기록 활동가 홍은전은 책의 시작에서 "나는 동물이다."라고 선언한다. 낮에는 저항하는 장애인을 생각하고 밤에는 동물을 생각하며 지내다가 둘을 연결할 방법을 찾는다. 동물을 가축화한 인간의 역사는 동물산업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러한 접근 방식은 결국 인간을 향한다. 동물산업의 각 영역에서 '장애화된 몸'을 발견하는 것 또한 필연적이다. 인간의 언어를 넘어 동물적 언어까지 알아가고자 하는 그의 분투가 더 많은 비장애인에게 가닿길 바란다. - 이현진 대표

  

📚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 2』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민음사, 2017

뇌는 완전한 암흑 속에 갇혀 있습니다. 당연한 사실이랍니다. 어린이 여러분. 그 목소리는 말한다. 뇌는 두개골 속 깨끗한 액체 속에 떠 있지, 빛 속에 있는 게 절대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뇌가 정신 속에 지어 올리는 세계는 빛으로 가득합니다. 뇌는 색과 움직임으로 넘실거립니다. 그런데 어린이 여러분, 뇌는 단 한 점의 빛도 없이 살아가면서 무슨 수로 우리에게 빛으로 가득한 세계를 지어 주는 것일까요? (1권, p80)

눈이 보이지 않는 프랑스 소녀 마리로르와 독일의 엘리트 소년병 베르너. 이야기는 소녀와 소년,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시점이 교차되며 빠르게 전개된다. 이들은 참혹한 세계 대전 속에서 크나큰 상실을 경험하지만,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연합군의 저항 수단이며 동시에 나치의 파괴 수단인 라디오로 두 사람은 마침내 연결되고 희망의 빛이 된다. - 이현진 대표


📚 『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푸른숲, 2021

“실험 단계일지 몰라도, 이건 새 치료법이네. 여러분에게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받을 기회가 주어진 치료법이란 말일세.” 저는 “치료를 받고 싶지 않아요.” 린다가 말한다. “저에게는 치료가 필요 없어요. 저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크렌쇼가 씨뻘개진다. “자네들은 좋지 않아. 그리고 정상도 아니지. 자폐인들이고, 장애인들이야. 특별 채용으로 고용된..” “정상 작동은 세탁기나 하는 거죠.” 츄이와 린다가 동시에 말하고 씩 웃는다. (p127)

출생 전후 모든 신체장애의 치료가 가능해진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 자폐스펙트럼의 마지막 세대인 '루'는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자폐인과 정상인 사이에서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 루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책의 시작은 혼란스럽다. 하지만 루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패턴으로 인식되는 일상에 익숙해지면서 자폐스펙트럼의 세계에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그 세계는 애틋하고 경이롭다. 이현진 대표




📺  개리 마커스, 어니스트 데이비스 「2029 기계가 멈추는 날」 I 고전5미닛 (5:58)

*유료 협찬 콘텐츠로 2024.5.31까지 시청 가능합니다. 


📺 나는 쓸모있는 사람일까? 쓸모없는 것이 더 가치있다 | 철학 강의 EBS 컬렉션 - 사이언스 (18:48)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모없음이 쓸모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네.”

📺  기쁨은 짧고 고통은 긴데, 왜 이 삶을 살아야 할까 | 책그림 (8:17)

나는 무엇을 숭배하는가? 그게 충분히 가치가 있는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강연과 데이비드 브룩스의 책 '두 번째 산'으로 사회가 원하는 답이 아닌 내가 채우는 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  인간은 왜 존재하는지 알고 싶어요 |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11:37)

주어진 삶은 왜 사느냐?로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인가?로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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