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계곡이 많은 대한민국은 최근 몇 십년간 온 국민이 나무를 부지런히 심어 문자 그대로 “화려강산”이 도처에 수두룩하다. 헤아릴 수 없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정신이 아찔할 만큼 아름다운 꽃들이 어디 산과 계곡에만 있으랴? 고층 건물 빽빽하고 자동차 쌩쌩 달리는 도심에도 공원이 조성되어 새와 나비가 찾아든다. 어디 이 뿐이랴? sns를 통해 지인들이 배달해 주는, 온갖 세련된 촬영기법이 동원된 사진 속에도 꽃 대궐이 장관이다. 요즘 사람들이 세상이 삭막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람의 마음이 삭막하다면 몰라도 자연 환경이 삭막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인간이 80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1년 365일에 80을 곱하면 29,200일, 대충 퉁을 쳐서 3만일 정도를 산다고 보아도 이 시간 중 제대로 된 봄을 즐기는 날이 과연 며칠이나 될까? 모처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연으로 향하는 날조차 우리는 휴대폰에 장착된 카메라 화면에 예쁘게 비춰질 이미지를 ‘계산’하느라 바쁘다. 우리들의 봄은 점점 화면 속에서 ‘구성된 봄’이 되고 있다. 그래서 봄은 이제 우리에게 특별한 무엇을 주지 못한다. 봄은 바로 소비되고 바로 잊힌다.
무에서 시작해서 순식간에 절정을 이루었다가 금세 쇠락하는 봄꽃은 사람의 생명을 닮았다. 자세히 보면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크게 본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가지 불안을 갖고 산다. 첫째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불안, 둘째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개개인이 어떻게 해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들 본질적으로 스스로에게 결정권이 없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혹은 지금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계발을 하거나 피부관리를 하고, 건강을 위해 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고 몸을 단련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마음의 근심이나 짐을 일시적으로 경감시켜 주지만 그 무엇도 궁극적인 해결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해마다 봄이 오면 우리들의 내면에 숨어 있던 위의 두 가지 불안은 꽃들의 탄생과 쇠락에 공명(共鳴) 반응을 하며 서서히 마음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봄의 꽃들은 겨우내 쓸쓸했던 빈 공간을 눈 깜짝할 사이에 화려하게 채워 세상을 몽환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화려한 꽃대궐은 눈 깜짝할 사이 폐가의 떨어진 문짝처럼 뒹굴다가 썩어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이건, 실패와 좌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건 봄에 꽃들이 피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한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마음의 돌이킴은 감정의 승화와 내면의 성숙에 일정 정도 자양분이 된다.
여기 한시의 절정 시대 중국 당나라 때의 세 명의 시인이 있다.
이들의 이름은 각각 왕유(王維:701추정~761), 이백(李白:701 ~ 762), 이상은(李商隱 : 813추정~858 추정) 이다.
이 3명의 시인이 봄의 꽃들과 함께 피워낸 시들은 큰 울림을 준다.
이상은(李商隱) - 아름다운 것은 죽음을 동반하기에 더욱 아름답다
이상은은 중국의 시인으로 제국 당나라에 몰락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자신의 성이 이씨로서 혈통으로 볼 때 빛나는 당나라 황실의 종실임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가 비록 당나라 황실과 같은 이씨라고 해도 제국의 수도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며 그 많은 중국 땅 이 씨 중의 한 사람으로 가까운 조상들의 배경이 좋은 것도 아닌, 어려서 조금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은 정도의 사람이었다. 10살에 아버지를 잃고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는데, 갈수록 치열해져 가는 당파 싸움에서 시대 판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중립적 태도를 유지한 후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살기 좋은 세상 구현에 일조하겠다는 젊은 날의 ‘거룩한’ 포부와 노력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순진무구하고 유치한 발상이었음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의에만 차 있지 않았으며, 죽을 때까지 세상에 대한 관조와 자기 관찰의 시선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봄의 꽃들에 대한 관조는 이상은에게 있어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적어도 자기 감정에 휘말리어 분노나 자포자기 심정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는 않는 데에 도움이 컸다. 아래 <꽃 아래에서 취하다(花下醉)>를 보면 시인 이상은이 봄과 봄꽃들을 통해 어떻게 스스로의 정서를 가다듬어 갔는지 살펴볼 수 있다.
< 꽃 아래에서 취하다 > ( 花下醉 ) - 이상은
꽃놀이 와서 마신 술에 문득 취하여 ( 尋芳不覺醉流霞 )
꽃나무에 기대어 그만 잠이 들었으니 어느새 해는 이미 뉘엇 ( 倚樹沉眠日已斜 )
정신 차려보니 사람들 모두 떠나고 없는데 때는 이미 한밤중 ( 客散酒醒深夜後 )
다시 촛불 켜고 떨어진 꽃잎을 찾는다. ( 更持紅燭賞殘花 )
돌이켜 보면 시인은 야심찬 포부와 당당함으로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 다시 봄이 찾아와 꽃나무 아래에 서니 가버린 청춘과 무정한 세상에 대해 깊은 회한과 슬픔을 느끼며 그 슬픔은 다시 체념으로 이어질 듯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떠난 깊은 밤에 홀로 깨어 촛불을 잡고 낙화를 더듬는다고 했으니 이는 자신의 삶이 옳았다는 신념에 흔들림이 없으며 마지막까지 이 길을 가게 될 것임을 예감한다.
첫 구에서 ‘류하(流霞)’는 ‘흐르는 노을’ 즉 채운(彩雲)이자 신선이 마신다는 미주(美酒)를 뜻한다. 꽃놀이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으며 술은 세속적 세계에서 순수의 세계로 가는 매개물이다. 술을 통해 따지고 계산하는 에고의 작동이 느려지고 시인은 꽃나무 아래에서 잠을 통해 내면의 자신과 연결된다. 흥이 다하여 모두들 떠난 자리에서 깨어나 잠시 에고의 세계로 돌아온 시인은 어두운 밤에 혼자 촛불을 들고 낙화를 더듬으며 다시 상춘(賞春)을 계속한다. 이것은 곧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그는 순수성을 계속 지켜갈 것임을, 그 뜻은 자신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저절로 나오는 거스를 수 없는 내면의 소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까?

이백(李白) - 흐르는 시간은 궁상만 떨도록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이백이 술이나 퍼마시고 흥청망청 놀았던 대책없고 팔자 좋은 낭만주의자였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증명하기 위해 이 사람만큼 노력한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싶을 만큼 사실 그는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출신을 따져보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큰 핸디캡이 있었다. 황실 종친이라고 끝까지 우겼지만 아버지는 상인출신이었으니 결코 금수저 집안이 아니었다. 지금으로 보자면 외국인 이민자 가정의 자녀 내지 소수민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신분적 한계를 지닌 인물이 당시 사회에서 존재감을 갖기 위해 사방을 떠돌며 고관이나 지방 세력가들을 찾아 동분서주하며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궁상을 떨거나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통쾌하고 초탈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아래 글에는 배꽃과 복숭아꽃이 활짝 핀 밭에서 친척 동생들을 불러 모아 놓고 봄밤을 즐기는 이백의 풍류 정신이 잘 드러난다.
< 춘야연도리원서 > ( 春夜宴桃李園序 ) - 이백
천지는 만물이 잠시 쉬어가는 여관, 시간은 영원한 나그네. ( 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 )
무상한 생이 한바탕 꿈이니 기쁨을 누려본들 얼마나 될까? ( 而浮生若夢,為歡幾何? )
옛 사람들이 촛불을 붙들고 밤까지 놀았던 것이 진실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네. …(중략)… ( 古人秉燭夜遊,良有以也. )
좋은 노래가 없다면 어떻게 회포를 펼쳐낼 수 있을까? ( 不有佳詠,何伸雅懷? )
오늘밤 시를 짓지 않는 자, 벌주를 먹이자. ( 如詩不成,罰依金谷酒數. )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에서 이백이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현실에 벌어지는 갖은 비정상과 무상함이 본인에게만 주어진 특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며, 인간 사회에서 천지간으로 시야를 더 확대시켜 보면 늦고 빠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천지간에 존재하는 일체 만물이 모두 그러한 숙명에 놓여 있음을 거듭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백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이것을 받아들이라고 제안한다. 쓸데없이 재고 따지면서, 스스로를 관념에 갇히게 만드는 각종 핑계거리를 내던지고 지금 눈앞에 펼쳐진 꽃의 향연에 집중하라고 재촉한다. 그는 인생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이런 저런 염려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하지 못하고 항상 이런 저런 이유를 둘러대며 자신을 가두지 말고 통쾌하게 즐기라고 권고한다. 문벌귀족들이 자신들이 가진 온갖 인간관계를 동원하여 권세를 행사하던 모순된 시대 상황과 그 스스로 그러한 시대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이백이 마지막까지 기백을 잃지 않았던 것은 개인의 생의 이치를 자연계 전체의 이치 안에서 살피고자 했던 그의 통쾌하고 활달한 기개 덕분이었다.
특히 봄꽃의 피어남과 쇠락에 대한 관찰과 공감은 이러한 삶의 태도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왕유(王維) - 마음이 한가로워야 낙화를 볼 수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명망가 출신인 왕유는 전형적인 ‘금수저’ 집안의 ‘뜨는’ 도련님이었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는 해도 워낙 좋은 집안 배경을 가졌기에 청소년기에 수도 장안에 당당히 입성하여 장안의 권력자 집안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사람들의 촉망을 받았다. 덕분에 왕유는 일찌감치 중앙 관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 돋보이는 언변과 글 솜씨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었으니 그야말로 만인이 부러워할 빛나는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매사가 순탄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가까이에서 보면 모두 저마다의 그늘이 있다. 시작이 비교적 순탄했던 벼슬길이 금세 각종 질곡을 겪으며 좌절과 실망감을 갖게 만들었고, 변경을 떠돌았던 경험으로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생겼다. 또한 안록산의 난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한 때 정치적 생명이 끝날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위기와 갈등과 모순 속에서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참선과 명상이었다. 이 때문에 왕유의 시는 만년으로 갈수록 선(禪)적 특색이 짙다. 왕유가 그려낸 봄꽃의 형상은 위의 두 시인과 사뭇 다르다. 그가 쓴 <계곡의 새 우는 소리(鳥鳴澗)>를 살펴보자.
< 계곡의 새 우는 소리 > ( 鳥鳴澗 ) - 왕유
사람이 한가로우니 계수나무 꽃 지고 ( 人閒桂花落 )
밤이 고요하니 봄산은 텅 비었다. ( 夜靜春山空 )
휘영청 뜬 달에 산새들 놀라 ( 月出驚山鳥 )
이따금 봄 계곡에서 새 우는 소리 들린다. ( 時鳴春澗中 )
이 시는 길이는 짧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먼저 첫 구에서 ‘사람이 한가로운’ 것과 ‘계수나무 꽃이 지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길래 시인은 이 두 사건을 하나의 구에 집어넣었을까? 바로 ‘한가로움(閒)’에 답이 있다. 불교에서는 눈앞에 펼쳐지는 삼라만상은 마음이 펼쳐내는 조화경으로 본다. 이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 ‘한가로움(閒)’이 없으면 제 아무리 계수나무 꽃이 진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는 영원히 계수나무 꽃이 지는 일이 없는 것이다. 1구에서 시인의 마음이 한가롭고 여유가 있으니 비로소 계수나무의 낙화가 여여하게 목도된다. 2구에서는 고요가 확장되어 마음이 비니 산도 비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시를 지을 때 시인은 깊은 선정에 들어 봄 산과 계곡과 달을 마주한 듯하다. 이러한 상태는 곧 시각과 청각을 맑게 작동하도록 이끈다. 그래서 시인의 마음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않고 사물을 그대로 보고 듣는 상태로 있게 한다. 앞서 이상은이나 이백이 성쇠(盛衰)와 부침(浮沈)이 자연의 보편적 이치임을 피어나고 지는 꽃에서 확인했다면 왕유는 그러한 성쇠와 부침에 상심하거나 동요되지 말자고 하는 것에서 나아가 있다. 그는 관념이나 생각이 지어내는 주관적 환상에서 벗어나 시각과 청각이 최적으로 활성화된 상태에서 봄밤의 낙화와 월출, 계곡의 물소리와 새울음 소리가 빚어내는 봄밤의 향연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장애가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펼쳐지는 우주의 공연에 하나가 된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활짝 핀 봄꽃들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왜 저들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일까? 그것은 필시 우리의 마음 안에 저들과 공명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봄꽃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동시에 슬픔을 느낀다. 상춘(賞春)과 상춘(傷春)은 마음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절정에는 이미 쇠락과 멸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숙명으로 인간도 결코 피해갈 수 없다. 봄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는 것도 좋고 봄꽃과 자신을 나란히 세워 찬란한 시절의 추억거리를 남기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봄꽃의 등장과 소멸의 전 과정을 찬찬히 지켜보며 사랑과 애틋함을 느껴보는 것도 매우 기쁘고 가슴 벅찬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천년도 더 넘은 시대를 살았던 세 시인이 봄밤 꽃나무 아래를 서성이며 불렀던 노래는 달랐지만 지금도 그 여운은 살아있다. 지금 바야흐로 봄이 절정이다. 오늘밤 우리도 우리의 노래를 길어 올리면 어떨까?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http://exhibition.artron.net/(雅昌數字展覽)
• 鄧中龍, 『李商隱詩譯註』, 福建敎育出版社, 2010
• 詹福瑞, 『李白詩全譯』, 河北人民出版社, 1997
• 陳貽焮 選注, 『王維詩選』, 人民文學出版社, 1983
• 이용재, 「王維 詩의 '官'과 '隱' 硏究」 연세대학교 박사논문, 2008
• 김준연, 「李商隱 詩에 보이는 ‘봄' 이미지 연구」, 2006
• 윤석우, 「飮酒詩에 나타난 中國詩人의 精神世界 : 陶淵明, 李白, 白居易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박사논문, 2005
| 필자_전영숙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연구원) / 박사논문 「北宋代 詩畫一律觀 연구」, 「허난설헌 시에 나타난 연꽃 이미지 연구」 등의 논문과 『중국 문화의 이해』, 『아시아 사회의 이해』 공저, 『돌의 미학 전각』, 홍일대사 법문집 『그저 인간이 되고 싶었다』(이상 한역), 『韓國電影100년』(중역)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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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계곡이 많은 대한민국은 최근 몇 십년간 온 국민이 나무를 부지런히 심어 문자 그대로 “화려강산”이 도처에 수두룩하다. 헤아릴 수 없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정신이 아찔할 만큼 아름다운 꽃들이 어디 산과 계곡에만 있으랴? 고층 건물 빽빽하고 자동차 쌩쌩 달리는 도심에도 공원이 조성되어 새와 나비가 찾아든다. 어디 이 뿐이랴? sns를 통해 지인들이 배달해 주는, 온갖 세련된 촬영기법이 동원된 사진 속에도 꽃 대궐이 장관이다. 요즘 사람들이 세상이 삭막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람의 마음이 삭막하다면 몰라도 자연 환경이 삭막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인간이 80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1년 365일에 80을 곱하면 29,200일, 대충 퉁을 쳐서 3만일 정도를 산다고 보아도 이 시간 중 제대로 된 봄을 즐기는 날이 과연 며칠이나 될까? 모처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연으로 향하는 날조차 우리는 휴대폰에 장착된 카메라 화면에 예쁘게 비춰질 이미지를 ‘계산’하느라 바쁘다. 우리들의 봄은 점점 화면 속에서 ‘구성된 봄’이 되고 있다. 그래서 봄은 이제 우리에게 특별한 무엇을 주지 못한다. 봄은 바로 소비되고 바로 잊힌다.
무에서 시작해서 순식간에 절정을 이루었다가 금세 쇠락하는 봄꽃은 사람의 생명을 닮았다. 자세히 보면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크게 본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가지 불안을 갖고 산다. 첫째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불안, 둘째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개개인이 어떻게 해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들 본질적으로 스스로에게 결정권이 없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혹은 지금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계발을 하거나 피부관리를 하고, 건강을 위해 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고 몸을 단련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마음의 근심이나 짐을 일시적으로 경감시켜 주지만 그 무엇도 궁극적인 해결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해마다 봄이 오면 우리들의 내면에 숨어 있던 위의 두 가지 불안은 꽃들의 탄생과 쇠락에 공명(共鳴) 반응을 하며 서서히 마음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봄의 꽃들은 겨우내 쓸쓸했던 빈 공간을 눈 깜짝할 사이에 화려하게 채워 세상을 몽환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화려한 꽃대궐은 눈 깜짝할 사이 폐가의 떨어진 문짝처럼 뒹굴다가 썩어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이건, 실패와 좌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건 봄에 꽃들이 피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한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마음의 돌이킴은 감정의 승화와 내면의 성숙에 일정 정도 자양분이 된다.
여기 한시의 절정 시대 중국 당나라 때의 세 명의 시인이 있다.
이들의 이름은 각각 왕유(王維:701추정~761), 이백(李白:701 ~ 762), 이상은(李商隱 : 813추정~858 추정) 이다.
이 3명의 시인이 봄의 꽃들과 함께 피워낸 시들은 큰 울림을 준다.
이상은(李商隱) - 아름다운 것은 죽음을 동반하기에 더욱 아름답다
이상은은 중국의 시인으로 제국 당나라에 몰락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자신의 성이 이씨로서 혈통으로 볼 때 빛나는 당나라 황실의 종실임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가 비록 당나라 황실과 같은 이씨라고 해도 제국의 수도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며 그 많은 중국 땅 이 씨 중의 한 사람으로 가까운 조상들의 배경이 좋은 것도 아닌, 어려서 조금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은 정도의 사람이었다. 10살에 아버지를 잃고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는데, 갈수록 치열해져 가는 당파 싸움에서 시대 판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중립적 태도를 유지한 후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살기 좋은 세상 구현에 일조하겠다는 젊은 날의 ‘거룩한’ 포부와 노력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순진무구하고 유치한 발상이었음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의에만 차 있지 않았으며, 죽을 때까지 세상에 대한 관조와 자기 관찰의 시선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봄의 꽃들에 대한 관조는 이상은에게 있어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적어도 자기 감정에 휘말리어 분노나 자포자기 심정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는 않는 데에 도움이 컸다. 아래 <꽃 아래에서 취하다(花下醉)>를 보면 시인 이상은이 봄과 봄꽃들을 통해 어떻게 스스로의 정서를 가다듬어 갔는지 살펴볼 수 있다.
< 꽃 아래에서 취하다 > ( 花下醉 ) - 이상은
꽃놀이 와서 마신 술에 문득 취하여 ( 尋芳不覺醉流霞 )
꽃나무에 기대어 그만 잠이 들었으니 어느새 해는 이미 뉘엇 ( 倚樹沉眠日已斜 )
정신 차려보니 사람들 모두 떠나고 없는데 때는 이미 한밤중 ( 客散酒醒深夜後 )
다시 촛불 켜고 떨어진 꽃잎을 찾는다. ( 更持紅燭賞殘花 )
돌이켜 보면 시인은 야심찬 포부와 당당함으로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 다시 봄이 찾아와 꽃나무 아래에 서니 가버린 청춘과 무정한 세상에 대해 깊은 회한과 슬픔을 느끼며 그 슬픔은 다시 체념으로 이어질 듯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떠난 깊은 밤에 홀로 깨어 촛불을 잡고 낙화를 더듬는다고 했으니 이는 자신의 삶이 옳았다는 신념에 흔들림이 없으며 마지막까지 이 길을 가게 될 것임을 예감한다.
첫 구에서 ‘류하(流霞)’는 ‘흐르는 노을’ 즉 채운(彩雲)이자 신선이 마신다는 미주(美酒)를 뜻한다. 꽃놀이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으며 술은 세속적 세계에서 순수의 세계로 가는 매개물이다. 술을 통해 따지고 계산하는 에고의 작동이 느려지고 시인은 꽃나무 아래에서 잠을 통해 내면의 자신과 연결된다. 흥이 다하여 모두들 떠난 자리에서 깨어나 잠시 에고의 세계로 돌아온 시인은 어두운 밤에 혼자 촛불을 들고 낙화를 더듬으며 다시 상춘(賞春)을 계속한다. 이것은 곧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그는 순수성을 계속 지켜갈 것임을, 그 뜻은 자신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저절로 나오는 거스를 수 없는 내면의 소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까?
이백(李白) - 흐르는 시간은 궁상만 떨도록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이백이 술이나 퍼마시고 흥청망청 놀았던 대책없고 팔자 좋은 낭만주의자였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증명하기 위해 이 사람만큼 노력한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싶을 만큼 사실 그는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출신을 따져보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큰 핸디캡이 있었다. 황실 종친이라고 끝까지 우겼지만 아버지는 상인출신이었으니 결코 금수저 집안이 아니었다. 지금으로 보자면 외국인 이민자 가정의 자녀 내지 소수민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신분적 한계를 지닌 인물이 당시 사회에서 존재감을 갖기 위해 사방을 떠돌며 고관이나 지방 세력가들을 찾아 동분서주하며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궁상을 떨거나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통쾌하고 초탈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아래 글에는 배꽃과 복숭아꽃이 활짝 핀 밭에서 친척 동생들을 불러 모아 놓고 봄밤을 즐기는 이백의 풍류 정신이 잘 드러난다.
< 춘야연도리원서 > ( 春夜宴桃李園序 ) - 이백
천지는 만물이 잠시 쉬어가는 여관, 시간은 영원한 나그네. ( 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 )
무상한 생이 한바탕 꿈이니 기쁨을 누려본들 얼마나 될까? ( 而浮生若夢,為歡幾何? )
옛 사람들이 촛불을 붙들고 밤까지 놀았던 것이 진실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네. …(중략)… ( 古人秉燭夜遊,良有以也. )
좋은 노래가 없다면 어떻게 회포를 펼쳐낼 수 있을까? ( 不有佳詠,何伸雅懷? )
오늘밤 시를 짓지 않는 자, 벌주를 먹이자. ( 如詩不成,罰依金谷酒數. )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에서 이백이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현실에 벌어지는 갖은 비정상과 무상함이 본인에게만 주어진 특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며, 인간 사회에서 천지간으로 시야를 더 확대시켜 보면 늦고 빠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천지간에 존재하는 일체 만물이 모두 그러한 숙명에 놓여 있음을 거듭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백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이것을 받아들이라고 제안한다. 쓸데없이 재고 따지면서, 스스로를 관념에 갇히게 만드는 각종 핑계거리를 내던지고 지금 눈앞에 펼쳐진 꽃의 향연에 집중하라고 재촉한다. 그는 인생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이런 저런 염려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하지 못하고 항상 이런 저런 이유를 둘러대며 자신을 가두지 말고 통쾌하게 즐기라고 권고한다. 문벌귀족들이 자신들이 가진 온갖 인간관계를 동원하여 권세를 행사하던 모순된 시대 상황과 그 스스로 그러한 시대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이백이 마지막까지 기백을 잃지 않았던 것은 개인의 생의 이치를 자연계 전체의 이치 안에서 살피고자 했던 그의 통쾌하고 활달한 기개 덕분이었다.
특히 봄꽃의 피어남과 쇠락에 대한 관찰과 공감은 이러한 삶의 태도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왕유(王維) - 마음이 한가로워야 낙화를 볼 수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명망가 출신인 왕유는 전형적인 ‘금수저’ 집안의 ‘뜨는’ 도련님이었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는 해도 워낙 좋은 집안 배경을 가졌기에 청소년기에 수도 장안에 당당히 입성하여 장안의 권력자 집안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사람들의 촉망을 받았다. 덕분에 왕유는 일찌감치 중앙 관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 돋보이는 언변과 글 솜씨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었으니 그야말로 만인이 부러워할 빛나는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매사가 순탄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가까이에서 보면 모두 저마다의 그늘이 있다. 시작이 비교적 순탄했던 벼슬길이 금세 각종 질곡을 겪으며 좌절과 실망감을 갖게 만들었고, 변경을 떠돌았던 경험으로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생겼다. 또한 안록산의 난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한 때 정치적 생명이 끝날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위기와 갈등과 모순 속에서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참선과 명상이었다. 이 때문에 왕유의 시는 만년으로 갈수록 선(禪)적 특색이 짙다. 왕유가 그려낸 봄꽃의 형상은 위의 두 시인과 사뭇 다르다. 그가 쓴 <계곡의 새 우는 소리(鳥鳴澗)>를 살펴보자.
< 계곡의 새 우는 소리 > ( 鳥鳴澗 ) - 왕유
사람이 한가로우니 계수나무 꽃 지고 ( 人閒桂花落 )
밤이 고요하니 봄산은 텅 비었다. ( 夜靜春山空 )
휘영청 뜬 달에 산새들 놀라 ( 月出驚山鳥 )
이따금 봄 계곡에서 새 우는 소리 들린다. ( 時鳴春澗中 )
이 시는 길이는 짧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먼저 첫 구에서 ‘사람이 한가로운’ 것과 ‘계수나무 꽃이 지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길래 시인은 이 두 사건을 하나의 구에 집어넣었을까? 바로 ‘한가로움(閒)’에 답이 있다. 불교에서는 눈앞에 펼쳐지는 삼라만상은 마음이 펼쳐내는 조화경으로 본다. 이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 ‘한가로움(閒)’이 없으면 제 아무리 계수나무 꽃이 진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는 영원히 계수나무 꽃이 지는 일이 없는 것이다. 1구에서 시인의 마음이 한가롭고 여유가 있으니 비로소 계수나무의 낙화가 여여하게 목도된다. 2구에서는 고요가 확장되어 마음이 비니 산도 비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시를 지을 때 시인은 깊은 선정에 들어 봄 산과 계곡과 달을 마주한 듯하다. 이러한 상태는 곧 시각과 청각을 맑게 작동하도록 이끈다. 그래서 시인의 마음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않고 사물을 그대로 보고 듣는 상태로 있게 한다. 앞서 이상은이나 이백이 성쇠(盛衰)와 부침(浮沈)이 자연의 보편적 이치임을 피어나고 지는 꽃에서 확인했다면 왕유는 그러한 성쇠와 부침에 상심하거나 동요되지 말자고 하는 것에서 나아가 있다. 그는 관념이나 생각이 지어내는 주관적 환상에서 벗어나 시각과 청각이 최적으로 활성화된 상태에서 봄밤의 낙화와 월출, 계곡의 물소리와 새울음 소리가 빚어내는 봄밤의 향연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장애가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펼쳐지는 우주의 공연에 하나가 된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활짝 핀 봄꽃들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왜 저들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일까? 그것은 필시 우리의 마음 안에 저들과 공명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봄꽃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동시에 슬픔을 느낀다. 상춘(賞春)과 상춘(傷春)은 마음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절정에는 이미 쇠락과 멸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숙명으로 인간도 결코 피해갈 수 없다. 봄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는 것도 좋고 봄꽃과 자신을 나란히 세워 찬란한 시절의 추억거리를 남기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봄꽃의 등장과 소멸의 전 과정을 찬찬히 지켜보며 사랑과 애틋함을 느껴보는 것도 매우 기쁘고 가슴 벅찬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천년도 더 넘은 시대를 살았던 세 시인이 봄밤 꽃나무 아래를 서성이며 불렀던 노래는 달랐지만 지금도 그 여운은 살아있다. 지금 바야흐로 봄이 절정이다. 오늘밤 우리도 우리의 노래를 길어 올리면 어떨까?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http://exhibition.artron.net/(雅昌數字展覽)
• 鄧中龍, 『李商隱詩譯註』, 福建敎育出版社, 2010
• 詹福瑞, 『李白詩全譯』, 河北人民出版社, 1997
• 陳貽焮 選注, 『王維詩選』, 人民文學出版社, 1983
• 이용재, 「王維 詩의 '官'과 '隱' 硏究」 연세대학교 박사논문, 2008
• 김준연, 「李商隱 詩에 보이는 ‘봄' 이미지 연구」, 2006
• 윤석우, 「飮酒詩에 나타난 中國詩人의 精神世界 : 陶淵明, 李白, 白居易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박사논문, 2005
필자_전영숙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연구원) / 박사논문 「北宋代 詩畫一律觀 연구」, 「허난설헌 시에 나타난 연꽃 이미지 연구」 등의 논문과 『중국 문화의 이해』, 『아시아 사회의 이해』 공저, 『돌의 미학 전각』, 홍일대사 법문집 『그저 인간이 되고 싶었다』(이상 한역), 『韓國電影100년』(중역)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