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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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클래식] XIII. 베토벤 미사곡 - < C장조 미사>, <장엄 미사> (오지희)

2021-10-22

- < C장조 미사>, <장엄 미사>

1807년 헝가리의 니콜라우스 2세 에스테르하지 후작(1765~1833)은 베토벤에게 < C장조 미사>(op.86) 작품을 위촉했다. 니콜라우스 2세는 하이든(1732~1809)이 28년간 주군으로 모셨던 니콜라우스 1세(1714~90)의 손자다. 1790년 9월, 니콜라우스 1세가 사망하자 안톤 에스테르하지(1738~94)가 뒤를 이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아버지와 달리 음악에 별 관심이 없던 안톤은 궁정의 음악단체와 음악관련 예산을 축소시켰다. 음악활동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하이든은 오히려 자유를 얻어 런던과 빈을 1년 반씩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1795년 6월까지 지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직책이 궁정에 소속되어 있었던 하이든은 의무에서 벗어난 음악가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다. 하이든이 런던에서 12개의 교향곡을 작곡하고 마지막으로 빈에 돌아왔을 때 주군은 니콜라우스 2세로 다시 바뀌어 있었다. 종교음악을 특히 애호했던 니콜라우스 2세는 하이든이 빈에 머물며 음악활동을 하도록 지시했다. 하이든은 일 년에 한 번 신심 깊은 후작부인의 영명축일 미사곡을 작곡하는 일을 수행했다. 그러던 하이든이 1802년부터 급속도로 건강이 안 좋아졌다. 1802년에 작곡한 <하르모니 미사>(Harmoniemesse)가 노작곡가의 마지막 14번째 미사곡이다. 1807년, 베토벤은 건강이 악화된 하이든을 대신해 후작부인의 영명축일 미사곡 작품 위촉을 받았다. 베토벤 < C장조 미사 >는 그렇게 하이든과 관련된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의해 탄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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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라우스 II 에스테르하지, 마틴 놀러 그림(1793)


모든 장르마다 독보적인 길을 걸었던 베토벤조차 미사곡의 대가 하이든의 뛰어난 능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토벤은 니콜라우스 2세의 위촉을 받아들이면서 하이든 미사곡이 어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창적인 걸작이라고 찬사를 바쳤다. 하이든이 그 동안 어떻게 미사곡을 써왔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하이든 미사곡 양식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 C장조 미사>를 작곡했다. 마침내 1807년 9월 13일, 아이젠슈타트의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속한 한 성에서 베토벤 지휘로 미사곡이 연주됐다. 베토벤에 대한 명성을 듣고 작품을 위촉한 니콜라우스 2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화려하고 반복적인 수사를 사용하는 하이든 미사 음악 양식에 익숙해있던 니콜라우스 2세는 가사의 의미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상대적으로 온유한 < C장조 미사>곡에 적응하지 못했다. 청중의 반응도 차가왔다. 베토벤은 가사의 표현력이 확대된 자신의 미사곡을 받아들이지 못한 당시 분위기에 자존심이 상해 씩씩거리며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 C장조 미사>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20년 뒤에 출판된 걸작 <장엄 미사>의 장대함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부족한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 C장조 미사>는 <운명> 교향곡을 만들고 <전원> 교향곡을 작곡하던 시기에 나온 베토벤 전성기 때 작품이다. 대규모의 연주회용 미사곡이 아닌 실제 미사에 사용할 수 있는 진정한 미사곡으로써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 C장조 미사>는 과거의 혹평을 뒤로하고 베토벤만의 독창적인 가사 표현력과 음악적 균형감을 지닌 고전시기 대표적인 미사곡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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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든, 토마스 하디 그림(1791)


미사곡은 키리에(자비송), 글로리아(영광송), 크레도(사도신경), 상투스(거룩하시도다), 아뉴스데이(하느님의 어린양)의 전통적인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있다. < C장조 미사 >라는 제목에 걸맞은 안정적인 조성을 유지하기 위해 첫 키리에와 마지막 아뉴스 데이가 C장조로 마무리되고, 상투스를 뺀 나머지 미사곡은 모두 C장조를 일부분이라도 갖고 있다. < C장조 미사>의 상투스에 연결된 베네딕투스는 다섯 부분 중 가장 아름다운 음색을 지니고 성악과 기악의 완벽한 균형감을 자랑한다. 4명의 독창자와 혼성합창, 관현악 연주가 간결한 리듬과 또렷한 선율 진행으로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 C장조 미사>는 분명 평안과 축복을 기리는 영명 축일에 가장 어울리는 경건한 미사곡임에 틀림없다.

1819~23년 사이에 작곡된 베토벤 <장엄 미사>(Missa Solemnis, op.123) D장조는 바흐의 < B단조 미사>와 함께 모든 미사곡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힌다. 제목 그대로 장엄함의 극치다. 진정한 미사곡은 <장엄 미사>라는 자부심을 지속적으로 표현했을 정도로 이 곡은 베토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베토벤은 존경하는 루돌프 대공이 추기경으로 즉위하는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장엄 미사>를 작곡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미사곡 작곡은 1820년 3월 20일로 정해진 대공의 즉위식에 맞추지 못했다. 1822년 말 완성됐으나 루돌프 대공에게 전해진 최종본은 1823년 3월 19일이었고, 초연은 1824년 4월 18일,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렸다. 같은 해 5월 7일, 빈에서는 교향곡 9번과 미사곡 중 키리에, 크레도, 아뉴스데이만 초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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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요제프 슈틸러 그림(1820)


베토벤이 즉위식이 거행되는 그 아름다운 날을 얼마나 축복하고 싶어 했는지는 <장엄 미사>를 구성하는 음악 양식으로도 알 수 있다. <장엄 미사>는 9번 <합창> 교향곡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져 일종의 성악과 기악이 합쳐진 교향곡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합창> 교향곡 4악장에서 울려 퍼지는 환희의 송가가 독창, 중창, 합창, 관현악의 거대한 울림으로 얼마나 청자에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지 한 번 상상해보라. 한번도 <장엄 미사>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합창> 교향곡에 울려 퍼지는 성악과 기악의 음향을 기억한다면, 이 미사곡이 지닌 거대한 규모나 장대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베토벤은 가사의 의미를 충실히 살리기 위해 미사에 쓰인 라틴어 가사를 반복해 강조했고 그 때마다 관현악과 성악의 미세한 변화를 시도했다. 한 선율을 다른 성부에서 지속적으로 모방하며 발전하는 작곡기법을 활용해 마치 강물이 흐르듯 유장하게 울리는 <장엄 미사>는 그렇기에 전례 없이 길고 장대한 구조를 갖고 있다. 미사곡에서 가사를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은 전통적인 종교음악 작곡기법의 주요 방식이다. 단지 <장엄 미사>에서 활용된 가사 반복은 베토벤이 과거 전통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어느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독자적인 기법으로 미사곡 가사의 의미를 살리려 고심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신비로움이 서린 키리에, 타악기를 열정적으로 사용하는 글로리아와 크레도의 빛나는 관현악 색채, 맑고 투명한 상투스, 강렬하면서도 간절하게 평화를 청하는 아뉴스데이는 매 순간 진지하게 가사의 의미를 재현하며 진정한 종교음악의 표상을 그대로 들려준다. 미사곡의 마지막 순간은 마치 기도를 마무리하듯이 조용히 여운을 남긴다. 대략 40분에 달하는 < C장조 미사>가 실제 미사용이라면, 1시간 반에 이르는 <장엄 미사>는 연주회용 미사곡으로 분류된다. 그 결과 성악과 기악이 합쳐진 규모에서 헨델, 바흐의 미사곡과도 차별화되는 <장엄 미사>는 베토벤이 그토록 소망하는 인류의 평화와 사랑을 가장 경건하게 드러낸 걸작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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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_오지희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이론과 음악사를 전공한 후 백석문화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음악평론가와 클래식음악 전문해설가로 활동중이다. 클래식음악을 넘어 다양한 공연예술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2018년 출판한 평론집 <음악에 글을 새기다> 는 이러한 필자의 활동을 담은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