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공>, <라주모프스키>
피아노 트리오는 작곡가 경력을 시작한 베토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대 청년시절인 1795년, 베토벤 작품 목록의 첫 작품 op.1 번호를 붙인 곡이 바로 3개의 피아노 트리오였다. 그런데 첫 트리오를 출판한 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베토벤은 주목할 만한 트리오 곡을 생산하지 못했다. 1808년이 되어서야 op.70의 2개의 피아노 트리오가 나왔지만 이 또한 수작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베토벤 명성에 걸맞은 완성도를 갖춘 빼어난 작품 <대공>은 1811년에 비로소 나왔다. 이때는 걸작을 쏟아내던 막바지 영웅의 시기였다. 베토벤은 이후 피아노 트리오 분야에서 <대공>을 뛰어 넘는 곡은 내놓지 못했다. 반면 현악사중주곡은 베토벤의 관심 속에 시기별로 뚜렷한 개성을 지닌 작품을 선보였다.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피아노 트리오 7번(op.97) <대공>(Archduke)은 참으로 품위가 넘치는 작품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악상이 넘치는데다 어떤 순간에도 요란하고 급박하게 음악이 몰아치는 법이 없다. 협주곡과 같은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전 악장에 걸쳐 대공의 품격이 기품 있는 음악으로 표현됐다. 자신의 음악을 진정 사랑하고 후원해 준 대공에 대한 작곡가의 감사의 마음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당시 귓병이 악화된 베토벤은 <대공>을 마지막으로 피아니스트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았다. 악기 간의 균형이 가장 중요한 트리오에서 다른 악기의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기에 스스로 연주자의 지위에서 내려온 것이다.
▲ 루돌프 대공
피아노 트리오 <대공>에서 루돌프 대공의 풍모를 연상시키는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악기 피아노다. 1악장 도입부에서부터 피아노는 독주 선율을 잔잔하면서도 담담하게 펼쳐놓는다. 의젓하고 당당한 주제다. 나아가 1악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드럽게 연주하란 뜻의 돌체(dolce) 악상기호는 주목할 만하다. 악곡 중간에 점점 커지는 음량으로 다채로운 선율이 진행되더라도 돌체의 정신은 과장되게 흐르지 않고 정도를 지키게끔 이끈다. 반면 2악장 스케르초는 1악장 시작과 달리 바이올린과 첼로가 익살스럽게 주제 선율을 주고받고 이후 피아노가 본격적으로 응답한다. 스케르초 악장이라도 발랄함은 과하지 않고 차분히 진행된다. 3악장의 느린 악장은 주제와 4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변주곡 형식이다. 루돌프 대공의 고귀한 품격을 상기하듯 시종일관 진지하고 사색적으로 흐른다. 전형적인 론도 형식인 4악장에서조차 경쾌함은 절제미를 자랑한다. 이렇듯 트리오 <대공>은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면서도 어떤 악장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아 음악 그 자체가 루돌프 대공을 상징한다.
서양음악사에서 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현악사중주(String Quartet) 장르의 대가는 하이든이다. 하이든을 교향곡의 아버지로 부르지만 사실 하이든은 현악사중주곡의 아버지가 더 정확한 호칭일 것이다. 현악사중주 분야 최초의 대가였기 때문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모두 초기 작품에서는 디베르티멘토적인 유희가 농후하나, 점차 현악사중주만의 순수한 음색을 탐구하는 진지한 작품을 생산해 나갔다. 현악사중주는 진정 고전적인 균형감과 현악기만의 세련된 울림을 추구하는 고전시기 최고의 수준 높은 장르가 됐다. 한편 모두 16곡의 현악사중주곡을 작곡한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로부터 이어오는 현악사중주 전통을 계승하면서 시기별로 자신이 추구하는 독자적인 내용을 담았다. 첫 현악사중주곡은 1800년에 나왔다. 교향곡 1번이 나온 시기이자 피아노 소나타는 이미 10곡이나 생산됐던 때이다. 베토벤은 현악사중주곡을 다른 장르보다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출발한데다가 전임자들의 완성도 높은 작품이 있었기에 시행착오를 줄이고 작업에 충실 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베토벤 현악사중주곡은 피아노 소나타,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초기(1798~1800), 중기(1806~10), 후기(1822~26) 세 시기로 나뉜다. 더구나 각각의 시기는 시간적으로 분리돼있어 더욱 명확하게 구분된다. 6곡을 한 세트로 묶은 첫 현악사중주곡(op.18)(1~6번)은 초기 때 작품이다. 당연히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이 상당히 묻어있다. 새로운 경지에 올라간 <라주모프스키>(op.59) 3곡(7~9번)은 중기 때 걸작이다. 아마추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으며 음악도 매우 복잡해졌다. 후기 때 작품은 피아노 소나타 창작활동을 마무리하고 교향곡 9번을 작곡한 이후 나왔다. 가장 자유롭게 내면에서 올라오는 심오한 양식으로 창작됐다. 1825년의 <대푸가>(Grosse Fuge)(op.133)가 전형적이다.
초기, 중기, 후기 세 시기 중 베토벤 현악사중주곡을 상징하는 대표 작품으로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곡을 꼽을 수 있다. 1805~6년에 작곡한 3개의 현악사중주곡 <라주모프스키>(Razumovsky)(op.59)는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헌정됐다. 라주모프스키 백작은 베토벤 현악사중주곡과 어떤 관계로 제목에 이름이 남을 수 있었을까? 안드레이 라주모프스키(Andrey K. Razumovsky 1752~1836) 백작은 오스트리아 빈에 꽤 오랜 기간 머물렀던 러시아 대사였다. 본인이 실력이 상당한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라 당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현악사중주단에서 제2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했다. 그러던 차에 새로 지은 화려한 궁전에 어울리는 현악사중주곡을 잘 알고 지내던 베토벤에게 위촉했다. 심지어 작품에 러시아 선율을 삽입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베토벤은 라주모프스키 백작을 존경했기에 당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현악사중주곡 창작에 다시 들어갔고, 이왕 현악사중주곡을 만들기로 작정한 이상 장르의 한계를 넘어 교향곡과 협주곡처럼 한 편의 드라마로 새롭게 시도했다. 따라서 라주모프스키 백작이 현악사중주곡과 관련해 가장 잘 한 행위는 베토벤에게 작품을 위촉했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현악사중주곡을 역사에 남긴 것이다.
▲ 라주모프스키 백작
베토벤이 현악사중주곡 7번(op.59-1) <라주모프스키>를 발표했을 당시 지나치게 난해한 특성으로 심한 비판에 직면했다. 이전 현악사중주곡과 비교해 새로운 음악양식이 가득했고 익숙한 현악사중주 장르가 생소하게 다가올 정도로 개성이 넘쳤다. 더구나 1악장에만 주로 사용된 소나타형식을 전 악장에 확대 적용해 그 결과 매 악장이 길고 복잡해졌다. 한마디로 현악사중주곡 형식과 내용이 극대화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1악장에서 첫 주제 선율을 첼로가 이끄는 방식은 매우 신선하다. 더구나 첼로는 단순한 베이스 역할을 벗어나 시기적절할 때 특유의 매력적인 선율을 중후하게 이끌어낸다. 1악장의 리듬은 복잡하지 않음에도 지속적으로 8분음표가 등장하는 400마디에 달하는 대규모의 길이를 갖고 있다. 2악장 스케르초 악장에서 스타카토로 통통 뛰는 리듬♬♪♪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도 매우 독특하다. 스케르초 악장치고 마디가 476마디에 달할 정도로 긴 것도 전례가 없다. 아울러 느린 3악장은 f단조 위에서 진지하고 섬세하게 슬픔을 표현한다. 이 또한 길이가 상당하다. 라주모프스키 백작이 부탁했던 러시아 선율은 마지막 악장에 들어갔다. 베토벤은 4악장을 러시아 주제(Thème russe)로 명시했다. 러시아 민요선율은 악기를 바꿔가며 음악을 만들어가고 특징적인 긴 트릴과 함께 경쾌하게 4악장을 지배한다. 현악사중주곡 7번 <라주모프스키>는 이렇듯 규모와 내용에서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현악사중주곡이다. 연주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연주자에게 베토벤이 후세를 위해 작곡했다고 일침을 놓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현악사중주곡 8번(op.59-2) <라주모프스키>는 7번과 대조적이다. 두 작품 모두 중기 때 나왔지만 7번이 거대함과 개성이 강조됐다면 8번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지만 전통적인 틀 안에서 치밀하게 전개된다. 주제가 자유롭고 서정적으로 발전하며 뻗어나가는데 기교와 화성은 복잡하다. 3개의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곡 중 가장 사색적이고 진지하다. 악기 간 음악적 균형감도 촘촘하게 연결돼있다. 한마디로 매우 밀도 높게 만들어진 까다로운 곡이었다. 라주모스프키 백작이 위촉해 베토벤이 일부러 삽입한 러시아 선율은 두 번째 <라주모프스키> 곡에서도 등장한다. 가장 엄숙한 분위기를 지닌 긴 2악장을 거쳐 스케르초 3악장에 이르면 장난치듯 가볍게 음악이 흐르는데, 러시아 주제는 바로 3악장 두 번째 부분에서 나타난다. 러시아 민속 노래에 기초한 이 선율은 후에 러시아 작곡가들도 여러 번 인용했다. 예를 들어 러시아 민족주의 작곡가 무소로그스키는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 대관식 장면에서,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듀엣(op.11)에서 사용했다. <라주모프스키> 3악장에서 러시아 선율은 선율이 점점 확대되는 바로크 시기 푸가토 기법으로 표현됐다. 처음 비올라에서 시작돼 제 2바이올린으로, 다시 첼로로, 마지막으로 제1바이올린으로 선율이 연결된다. 그리고 다시 두 악기가 함께, 마지막으로 모두 러시아 선율을 노래한다. 한편 4악장은 앞의 분위기와 달리 아주 유쾌하다. 가볍게 받쳐주는 반주 위에 바이올린 선율이 신나게 흐르며 두 번째 <라주모프스키>를 활기차게 마무리 짓는다.
현악사중주곡 9번(op.59-3) <라주모프스키>는 분위기가 밝으면서도 힘이 넘친다. 3개의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곡 중 가장 복잡한 음악양식을 갖고 있어도 서로 선율을 모방해 진행하는 각 악기 간 음악적 균형감이 충실하다. 9번에서 가장 주목할 악장은 4악장이다. 9번을 ‘영웅 사중주곡’(Helden Quartet)으로 부르는 것은 순전히 4악장 덕분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푸가 기법으로 엮여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엄청난 추진력을 갖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종결되는 4악장은 가히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곡 3개의 축소판이자 종합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결과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곡 7~9번은 각자 개성을 갖는 개별적인 작품이자 음악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들어선 새로운 현악사중주곡으로 함께 묶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_오지희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이론과 음악사를 전공한 후 백석문화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음악평론가와 클래식음악 전문해설가로 활동중이다. 클래식음악을 넘어 다양한 공연예술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2018년 출판한 평론집 <음악에 글을 새기다> 는 이러한 필자의 활동을 담은 대표작이다."
- <대공>, <라주모프스키>
피아노 트리오는 작곡가 경력을 시작한 베토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대 청년시절인 1795년, 베토벤 작품 목록의 첫 작품 op.1 번호를 붙인 곡이 바로 3개의 피아노 트리오였다. 그런데 첫 트리오를 출판한 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베토벤은 주목할 만한 트리오 곡을 생산하지 못했다. 1808년이 되어서야 op.70의 2개의 피아노 트리오가 나왔지만 이 또한 수작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베토벤 명성에 걸맞은 완성도를 갖춘 빼어난 작품 <대공>은 1811년에 비로소 나왔다. 이때는 걸작을 쏟아내던 막바지 영웅의 시기였다. 베토벤은 이후 피아노 트리오 분야에서 <대공>을 뛰어 넘는 곡은 내놓지 못했다. 반면 현악사중주곡은 베토벤의 관심 속에 시기별로 뚜렷한 개성을 지닌 작품을 선보였다.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피아노 트리오 7번(op.97) <대공>(Archduke)은 참으로 품위가 넘치는 작품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악상이 넘치는데다 어떤 순간에도 요란하고 급박하게 음악이 몰아치는 법이 없다. 협주곡과 같은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전 악장에 걸쳐 대공의 품격이 기품 있는 음악으로 표현됐다. 자신의 음악을 진정 사랑하고 후원해 준 대공에 대한 작곡가의 감사의 마음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당시 귓병이 악화된 베토벤은 <대공>을 마지막으로 피아니스트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았다. 악기 간의 균형이 가장 중요한 트리오에서 다른 악기의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기에 스스로 연주자의 지위에서 내려온 것이다.
▲ 루돌프 대공
피아노 트리오 <대공>에서 루돌프 대공의 풍모를 연상시키는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악기 피아노다. 1악장 도입부에서부터 피아노는 독주 선율을 잔잔하면서도 담담하게 펼쳐놓는다. 의젓하고 당당한 주제다. 나아가 1악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드럽게 연주하란 뜻의 돌체(dolce) 악상기호는 주목할 만하다. 악곡 중간에 점점 커지는 음량으로 다채로운 선율이 진행되더라도 돌체의 정신은 과장되게 흐르지 않고 정도를 지키게끔 이끈다. 반면 2악장 스케르초는 1악장 시작과 달리 바이올린과 첼로가 익살스럽게 주제 선율을 주고받고 이후 피아노가 본격적으로 응답한다. 스케르초 악장이라도 발랄함은 과하지 않고 차분히 진행된다. 3악장의 느린 악장은 주제와 4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변주곡 형식이다. 루돌프 대공의 고귀한 품격을 상기하듯 시종일관 진지하고 사색적으로 흐른다. 전형적인 론도 형식인 4악장에서조차 경쾌함은 절제미를 자랑한다. 이렇듯 트리오 <대공>은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면서도 어떤 악장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아 음악 그 자체가 루돌프 대공을 상징한다.
서양음악사에서 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현악사중주(String Quartet) 장르의 대가는 하이든이다. 하이든을 교향곡의 아버지로 부르지만 사실 하이든은 현악사중주곡의 아버지가 더 정확한 호칭일 것이다. 현악사중주 분야 최초의 대가였기 때문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모두 초기 작품에서는 디베르티멘토적인 유희가 농후하나, 점차 현악사중주만의 순수한 음색을 탐구하는 진지한 작품을 생산해 나갔다. 현악사중주는 진정 고전적인 균형감과 현악기만의 세련된 울림을 추구하는 고전시기 최고의 수준 높은 장르가 됐다. 한편 모두 16곡의 현악사중주곡을 작곡한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로부터 이어오는 현악사중주 전통을 계승하면서 시기별로 자신이 추구하는 독자적인 내용을 담았다. 첫 현악사중주곡은 1800년에 나왔다. 교향곡 1번이 나온 시기이자 피아노 소나타는 이미 10곡이나 생산됐던 때이다. 베토벤은 현악사중주곡을 다른 장르보다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출발한데다가 전임자들의 완성도 높은 작품이 있었기에 시행착오를 줄이고 작업에 충실 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베토벤 현악사중주곡은 피아노 소나타,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초기(1798~1800), 중기(1806~10), 후기(1822~26) 세 시기로 나뉜다. 더구나 각각의 시기는 시간적으로 분리돼있어 더욱 명확하게 구분된다. 6곡을 한 세트로 묶은 첫 현악사중주곡(op.18)(1~6번)은 초기 때 작품이다. 당연히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이 상당히 묻어있다. 새로운 경지에 올라간 <라주모프스키>(op.59) 3곡(7~9번)은 중기 때 걸작이다. 아마추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으며 음악도 매우 복잡해졌다. 후기 때 작품은 피아노 소나타 창작활동을 마무리하고 교향곡 9번을 작곡한 이후 나왔다. 가장 자유롭게 내면에서 올라오는 심오한 양식으로 창작됐다. 1825년의 <대푸가>(Grosse Fuge)(op.133)가 전형적이다.
초기, 중기, 후기 세 시기 중 베토벤 현악사중주곡을 상징하는 대표 작품으로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곡을 꼽을 수 있다. 1805~6년에 작곡한 3개의 현악사중주곡 <라주모프스키>(Razumovsky)(op.59)는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헌정됐다. 라주모프스키 백작은 베토벤 현악사중주곡과 어떤 관계로 제목에 이름이 남을 수 있었을까? 안드레이 라주모프스키(Andrey K. Razumovsky 1752~1836) 백작은 오스트리아 빈에 꽤 오랜 기간 머물렀던 러시아 대사였다. 본인이 실력이 상당한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라 당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현악사중주단에서 제2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했다. 그러던 차에 새로 지은 화려한 궁전에 어울리는 현악사중주곡을 잘 알고 지내던 베토벤에게 위촉했다. 심지어 작품에 러시아 선율을 삽입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베토벤은 라주모프스키 백작을 존경했기에 당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현악사중주곡 창작에 다시 들어갔고, 이왕 현악사중주곡을 만들기로 작정한 이상 장르의 한계를 넘어 교향곡과 협주곡처럼 한 편의 드라마로 새롭게 시도했다. 따라서 라주모프스키 백작이 현악사중주곡과 관련해 가장 잘 한 행위는 베토벤에게 작품을 위촉했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현악사중주곡을 역사에 남긴 것이다.
▲ 라주모프스키 백작
베토벤이 현악사중주곡 7번(op.59-1) <라주모프스키>를 발표했을 당시 지나치게 난해한 특성으로 심한 비판에 직면했다. 이전 현악사중주곡과 비교해 새로운 음악양식이 가득했고 익숙한 현악사중주 장르가 생소하게 다가올 정도로 개성이 넘쳤다. 더구나 1악장에만 주로 사용된 소나타형식을 전 악장에 확대 적용해 그 결과 매 악장이 길고 복잡해졌다. 한마디로 현악사중주곡 형식과 내용이 극대화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1악장에서 첫 주제 선율을 첼로가 이끄는 방식은 매우 신선하다. 더구나 첼로는 단순한 베이스 역할을 벗어나 시기적절할 때 특유의 매력적인 선율을 중후하게 이끌어낸다. 1악장의 리듬은 복잡하지 않음에도 지속적으로 8분음표가 등장하는 400마디에 달하는 대규모의 길이를 갖고 있다. 2악장 스케르초 악장에서 스타카토로 통통 뛰는 리듬♬♪♪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도 매우 독특하다. 스케르초 악장치고 마디가 476마디에 달할 정도로 긴 것도 전례가 없다. 아울러 느린 3악장은 f단조 위에서 진지하고 섬세하게 슬픔을 표현한다. 이 또한 길이가 상당하다. 라주모프스키 백작이 부탁했던 러시아 선율은 마지막 악장에 들어갔다. 베토벤은 4악장을 러시아 주제(Thème russe)로 명시했다. 러시아 민요선율은 악기를 바꿔가며 음악을 만들어가고 특징적인 긴 트릴과 함께 경쾌하게 4악장을 지배한다. 현악사중주곡 7번 <라주모프스키>는 이렇듯 규모와 내용에서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현악사중주곡이다. 연주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연주자에게 베토벤이 후세를 위해 작곡했다고 일침을 놓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현악사중주곡 8번(op.59-2) <라주모프스키>는 7번과 대조적이다. 두 작품 모두 중기 때 나왔지만 7번이 거대함과 개성이 강조됐다면 8번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지만 전통적인 틀 안에서 치밀하게 전개된다. 주제가 자유롭고 서정적으로 발전하며 뻗어나가는데 기교와 화성은 복잡하다. 3개의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곡 중 가장 사색적이고 진지하다. 악기 간 음악적 균형감도 촘촘하게 연결돼있다. 한마디로 매우 밀도 높게 만들어진 까다로운 곡이었다. 라주모스프키 백작이 위촉해 베토벤이 일부러 삽입한 러시아 선율은 두 번째 <라주모프스키> 곡에서도 등장한다. 가장 엄숙한 분위기를 지닌 긴 2악장을 거쳐 스케르초 3악장에 이르면 장난치듯 가볍게 음악이 흐르는데, 러시아 주제는 바로 3악장 두 번째 부분에서 나타난다. 러시아 민속 노래에 기초한 이 선율은 후에 러시아 작곡가들도 여러 번 인용했다. 예를 들어 러시아 민족주의 작곡가 무소로그스키는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 대관식 장면에서,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듀엣(op.11)에서 사용했다. <라주모프스키> 3악장에서 러시아 선율은 선율이 점점 확대되는 바로크 시기 푸가토 기법으로 표현됐다. 처음 비올라에서 시작돼 제 2바이올린으로, 다시 첼로로, 마지막으로 제1바이올린으로 선율이 연결된다. 그리고 다시 두 악기가 함께, 마지막으로 모두 러시아 선율을 노래한다. 한편 4악장은 앞의 분위기와 달리 아주 유쾌하다. 가볍게 받쳐주는 반주 위에 바이올린 선율이 신나게 흐르며 두 번째 <라주모프스키>를 활기차게 마무리 짓는다.
현악사중주곡 9번(op.59-3) <라주모프스키>는 분위기가 밝으면서도 힘이 넘친다. 3개의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곡 중 가장 복잡한 음악양식을 갖고 있어도 서로 선율을 모방해 진행하는 각 악기 간 음악적 균형감이 충실하다. 9번에서 가장 주목할 악장은 4악장이다. 9번을 ‘영웅 사중주곡’(Helden Quartet)으로 부르는 것은 순전히 4악장 덕분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푸가 기법으로 엮여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엄청난 추진력을 갖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종결되는 4악장은 가히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곡 3개의 축소판이자 종합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결과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곡 7~9번은 각자 개성을 갖는 개별적인 작품이자 음악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들어선 새로운 현악사중주곡으로 함께 묶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_오지희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이론과 음악사를 전공한 후 백석문화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음악평론가와 클래식음악 전문해설가로 활동중이다. 클래식음악을 넘어 다양한 공연예술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2018년 출판한 평론집 <음악에 글을 새기다> 는 이러한 필자의 활동을 담은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