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명상과학 아고라를 앞두고 효자동의 아담한 복합 문화 공간 <울림과 퍼짐>에서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미산 소장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의 성해영 교수가 만났다. (이하 ‘미’와 ‘성’으로 약칭)
■ 커피를 마시며
(성) 소장님은 커피 안 드시나요?
(미) 물이면 됩니다. 저는 아침에 방탄커피를 마시고 왔어요.
(성) 방탄커피가 무슨 뜻이죠?
(미) 말 그대로 방탄(bulletin-proof) 커피인데요, 레시피를 말씀드리면 이해하실 수 있어요. 손수 내린 신선한 커피와 MCT오일1) 그리고 유기농 무염버터를 블렌더로 잘 섞어서 아침에 마시면 오후까지 포만감이 유지되면서 정신을 깨워주는 효과가 있거든요.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됩니다.
실리콘벨리에서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가 된 사업가 데이브 아스프리는 몸무게가 140kg에 육박하는 거구였지요. 서른 살 무렵 병원에서 지금의 몸 상태가 계속 된다면 조만간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할 정도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 됩니다. 위기감을 느낀 아스프리는 75만 달러가 넘는 비용을 투자하여 비만에 관한 전문가들을 모아 종합적 연구를 실행하고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지요. 그러면서 다이어트에 관한 중요한 발견들을 했습니다. 지방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신화를 깨뜨렸다는 것이 중요한 점 중 하나입니다. 몸에 바로 흡수되는 좋은 지방은 살이 되지 않고 오히려 지방을 분해한다는 것이죠. 오히려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포도당으로 바뀌고 지방으로 축적됩니다.
(성) 소장님이 말씀하시니 저도 꼭 해 봐야겠군요.
(미) 저도 200일정도만에 7kg가 빠졌어요. 지인의 소개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주변에 함께 하는 동료들이 생겼죠. 『최강의 식사』2)라는 책에 잘 소개되어 있어요. 책을 읽고 나면 설득이 될 수밖에 없어요. 지금도 꾸준히 실천 중인데, 무엇보다도 에너지를 충분히 쓰면서 몸은 부담스럽지 않게 되더라고요. 업무 효율이 올라가니 시간도 절약되고요. 스님들은 보통 탄수화물을 많이 드시고 고기를 먹지 않는데 살이 쪄요. 탄수화물이 주범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그것을 줄이고, 좋은 지방을 먹게 되었죠.
최근에 유행했던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사라는 것도 있었는데, 그건 부작용이 있어 많은 의사들이 경고하는 방식이에요. 방탄커피는 그 이후에 나온 개선된 방식입니다. 하지만 실천하려면 책을 보고 과학적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몸을 관찰하면서 양을 조절해야 해요.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실천은 사실 명상 수행과 다르지 않아요. 끊임없이 몸과 마음과 의식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지요.
■ 명상과 몸
(성) 소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좋아지신 비법이 있었군요(웃음). 식이요법으로 몸을 만들어가는 것이 명상의 과정과 같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통찰이네요.
(미) 명상의 가장 직접적인 출발점은 몸을 살피는 것이에요. 우리는 보통 몸의 바깥만을 살피지만, 명상은 몸 안을 살피죠. 그것을 뇌과학에서는 내수용감각3)이라고 부릅니다. 내장들과 같은 신체 내부의 생리학적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성) 바이오피드백4)의 전단계로서 이해할 수 있겠군요.
(미) 명상에서 내수용감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최근에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지요. 우리는 오감을 통해 외부 세계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데, 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 몸이 사실은 말을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해 결국 심각한 질병을 앓는 일까지 생기는 것이겠네요.
(미) 그래서 몸을 명상의 첫 번째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또한 몸의 현상 중에서 의식과 몸의 느낌을 연결해 주는 것은 호흡입니다. 따라서 명상의 몸 관찰에서는 대부분 호흡 관찰이 우선시되는 것이죠. 호흡을 관찰하다 보면 의식을 들여다보는 내적 역량과 내수용감각이 함께 발달하여 알아차림(awareness), 마음챙김(mindfulness) 능력이 증가하게 되지요.
몸에 있어서 먹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좋은 명상 센터에 가면 음식이 정말 영양학적으로 골고루 구성되어 있고, 짜거나 매운 자극적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최근 한 명상센터에서 5박6일간의 지도자 양성 코스가 있었는데, 그곳의 식사가 너무도 훌륭했어요. 그런 좋은 음식은 정서적 안정과 더불어, 자신의 의식을 명료하고 깊게 자각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래서 명상의 시작은 먹는 것, 몸과 중요한 관련이 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최면과 명상
(성) 그러한 점에서 보면 최면도 몸과 중요한 관련이 있습니다. 최면의 기본 원리 중 하나는 의식을 깊은 마음의 상태로 유도하기 위해 호흡을 천천히 하면서 몸을 이완시키는 것입니다. 직접 그렇게 몸을 이완시켜서 힘을 빼고 무방비상태로 긴장을 풀어놓게 되면, 역설적으로 자신이 몸의 어디에 과한 힘을 주거나 불편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몸의 소리를 듣기 위해 몸을 이완해야 하듯, 명상에서도 생각에 사로잡힌 마음을 풀어놓는 것이 기본이겠지요. 최면의 원리를 따라 이완을 해 보면 몸의 어느 부위에 왜 불필요한 힘과 긴장이 들어 있었는지 알아차리게 되고, 평소에는 전혀 모르던 것을 빠르게 알아차리게 되더군요.
(미) 감각이 깨어나면 의식과 연결됩니다. 감각이 깨어나지 않으면 의식과의 연결이 막혀 있기에 깊은 의식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중에서도 최면은 무의식과 연결되어야 효과가 나죠.
(성) 맞습니다. 그래서 최면에서는 세팅도 중요하고, 누가 최면을 거는지도 매우 중요하죠. 그런 점에서 최면도 과학이라는 영역에 반 쯤 걸쳐 있으나, 명상처럼 측정하기 힘든 인간의 마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이 많이 있는 분야인 것 같습니다. 최면에 잘 들어가는 사람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의식의 심층으로 쉽게 들어갑니다. 그게 한 편으로는 위험성을 내포하기도 하죠.
(미) 최면이 특정한 임상현장에서 사용되지만, 동시에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이유는 의식에 대한 전체적인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가 없이 너무 강력한 체험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또한 수동적으로 경험된 후 인지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성) 그 점에서 명상이라는 것도 인간의 마음, 존재의 심층으로 들어가는 굉장히 중요한 테크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은 사전에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특정한 현상이 발생하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관한 체계적인 논의들을 갖추고 있어서 설령 그 과정에서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종교적 경험이나 심리적 현상이 생기더라도 개인을 보호해줄 수 있는 틀거리, 안전장치, 시스템이 있습니다. 제도화된 종교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틀은 명상의 장단점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종교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최면이나, 인간 마음의 깊숙한 곳을 강력하게 터뜨려 놀라운 정도의 엑스터시나 트랜스 상태를 유도하는 기술들이 악용되는 사례들이 있기에, 인간의 마음에 심층적으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양날의 칼처럼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 4차산업혁명과 명상과학
(미) 서양에서는 지난 40여 년간 마음챙김(mindfulness)을 중심으로 동서양 종교가 가진 소중한 정신문화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면서, 아까 말씀하신 전체적인 틀이나 원리 등 종교에서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놓은 것을 활용해서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트레스 경감/치유 프로그램으로 일반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기반에는 철저한 과학적 검증이 있었습니다. 특히 뇌신경과학의 발달로 fMRI5)를 촬영하고 뇌파나 호르몬 검사를 실시해서 현재 어떤 생리적 변화가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밝히는 작업이 병행되었기에 지금처럼 명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편화된 것입니다.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는 그러한 부분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한국에서도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도 대중화하는 심화·확산의 일을 하려 합니다. (재)플라톤 아카데미 역시 인문학의 심화·확산을 모토로 하고 있지 않나요? 지금은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만남이 매우 중요한 시대입니다. 과학기술이 놀라운 방식으로 진보하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교차점이 바로 인간의 마음과 뇌라는 자각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시작되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4차산업혁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미 가상세계에서 중요한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을 통해 더 거대한 일들이 펼쳐질 겁니다. 그러한 변화들이 디지털 세계에서 아날로그 세계로, 몸과 마음과 삶 속으로 어떻게 들어오게 되는지, 그러한 복잡한 관계들을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흐름에서 중심은 언제나 인간입니다. 인간의 의식·몸·정서에 대한 보다 정확한 연구가 필요하죠. 흥미롭게도 사실 명상은 오랜 전부터 몸과 우리의 느낌과 정서를 연구했고, 그것을 통해 깊은 의식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체계화해 왔지요. 그래서 지금이 명상과 과학기술이 만날 수 있는 매우 좋은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명상과학 리포트 발간
(미) 최근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에서 『2018 Start up 명상과학 리포트』가 발간되었어요. 명상과학 연구소의 설립 목적과 연구 방향들을 정리한 것이죠. 명상과학이라는 것은 새로운 융·복합학문입니다. 저는 그 구도를 이렇게 그려 보았어요. 행복·진리·사랑이라는 큰 범주의 가치 추구를 명상과 과학 모두가 공유하고 있지요. 종교에서는 명상을 통해 이러한 가치를 추구해왔어요. 과학 역시 이 범주 안에서 진리를 탐구하고 나누면서 인간이 좀 더 행복해지기를 추구해 왔지요. 그런데 근래에 둘 사이에서 만나는 지점이 생겨난 것이죠. 이것을 명상과학이라 부르자는 것입니다. 명상과학 리포트에서는 명상과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명상과학은 명상의 효과와 기전을 뇌신경 및 인지심리 과학적 방법을 통해 규명하려는 융·복합적 새로운 학문이다. 동서양에서 오랫동안 전승 및 실천되어 온 명상의 정신적·신체적 효과와 기전을 뇌파, 호르몬 변화, fMRI, 심리 측정 도구 등의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행복, 진리, 사랑의 덕목을 탐구하고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6)
■ 명상과 인지심리학
(성) 다양한 실험장비를 통해 뇌의 물리적 현상을 탐구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과학적 접근이 한 편에 있고, 다른 한 편에는 자기성찰과 반성, 의미 부여의 해석학적 체계로서의 인문학이 있습니다. 그 중간에는 1990-2000년대에 등장한 NLP7) 등을 포함하는 인지심리학이 존재하지요. 인간이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바라보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뇌의 물질적인 변화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삶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최근에 굉장히 많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인지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언어체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언어체계라는 것은 사태나 사물이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이며, 관점과 세계관 자체가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기에 언어로 구성된 세계관이나 관점을 바꾸면 실제 인간의 몸과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러한 몸과 마음의 변화는 다시 세계관이나 언어체계의 변화를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 점에서 인지심리학자들이 인지의 방식과 관련하여 마음챙김 논의를 많이 하더군요. 초기의 인지심리학이 장·단기 기억 연구 등의 주제를 엄밀한 실험과학이나 자연과학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전에 다루지 않았던 종교적 지혜나 명상이 가르쳐 준 통찰 같은 주제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챙김이 자신의 바깥에서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언어체계나 세계관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상위 인지 자체가 인간의 삶의 많은 문제들(우울증 등)을 인지치료적 관점에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미) 그렇게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고, 심리학계 내에서도 끊임없이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한 때는 행동주의 심리치료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인지심리학이나 실존주의 심리치료 등이 발달했지요. 그 뒤에 존 카밧진이 MBSR8)을 임상적으로 실험하면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자 인지심리학자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죠. 특히 옥스퍼드의 마음챙김 센터9)에는 마크 윌리엄스10)나, 캐나다의 진델11) 같은 인지심리학의 대가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이 마음챙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인지심리학적 연구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인지적으로 수정하고 자각했는데도 환자들의 우울증이 재발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존 카밧진을 중심으로 마음챙김울 기반으로 한 인지치료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문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 MBCT12)입니다. MBCT가 효과를 나타냈던 까닭은 인지가 고쳐져서 치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지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의식이 확장되고 깊어지고, 거기서 인지적 변화 뿐 아니라 정서적 변화까지 일어나서 근본적 치료가 된 것이지요. 그러한 기제들이 작동하면서 본질적 치료가 일어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발견되고 검증되어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었죠. 이제 MBCT는 영국에서는 보험료 지급이 될 정도로 공식적으로 검증된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성) 그러한 대목에서 기존의 인지 체계나 세계관을 수정하거나, 사태나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스템 자체에서 벗어나거나, 고정불변의 체계에서 벗어나는 것, 다르게 표현하자면 마음챙김에서 말하듯이 있는 그대로 보고 수용하려는 태도 등은 명상이 이야기하고 있는 (또는 최면이나 다른 여러 가지 의식의 기법들이 말하고 있는) 인간의 자기규정이나 고정불변하는 자기 정체성의 시스템으로 여겼던 것으로부터 무슨 이유에서든 벗어나게 되는 것과 유사합니다. 여기서는 ‘확장’이라는 개념이 더 맞을 것 같아요. 자기 정체성의 ‘확장’을 연습하는 것이지요. 사실 마음챙김은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곧바로 반응해서 감정에 휩싸임으로써 기존의 인지 체계를 더욱 강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호흡 조절 등의 방법을 통해 나의 일, 나의 사건, 내가 처한 상황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내가 아닌 것처럼 지켜보게 하는 탈-동일시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바라봄’을 종교학적 관점에서 해석해보면, 그것은 일종의 엑스터시(ecstasy)가 아닐까 싶어요. 스스로 자기 바깥에 선다는 희랍어의 본래 의미에서 그러하지요.13) 우리는 보통 엑스터시를 정서적으로 과열된 망아경이나 황홀경처럼 감정적인 요인이 과도한 것으로 바라보면서 엑스터시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지만, 원래의 엑스터시의 개념 자체는 실제로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자기를 지켜본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럴 경우 그렇게 벗어나서 지켜보는 자는 누구냐는 궁극적 질문이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이 무한하게 발생합니다만, 적어도 마치 자기를 자기가 아닌 것처럼 밖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인지체계를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구원의 씨앗'처럼 비춰지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음챙김과 명상이 뇌인지체계나 감정적인 측면들을 새로운 인지체계나 확장된 인지체계로 재구성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최근 논의되는 것 같아요.
■ 오늘날의 명상과학 연구와 프로그램들
(미) 인지적 접근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는 언어체계 분석을 통해 종교의 체계를 빌리지 않고, 촘스키14)의 언어이론 등을 이용한 독자적인 분석으로 만든 임상 프로그램인 ACT15)가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아주 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으며 탈-동일시16)에 대한 정연한 이론들, 다양한 연습들을 통해 문제를 벗어나게 합니다.
(성) 탈-자동화17)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자동화된 인지체계나 감정체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지요.
(미) 명상과학 리포트에 정리되어 있는데요, ACT는 스티븐 헤이즈18)가 만들었습니다. ACT는 MBSR, MBCT와 함께 임상 현장에서 아주 영향력이 큰 기법입니다. 이것을 분석해보니 매우 체계적이더군요. 불교 전공자로서 바라보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존재의 현상을 보는 세 가지 관점이 다 녹아 있더군요. 첫째, 세상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없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관점입니다. 둘째, 거기에 나라는 실체가 없어서 나는 과정에서의 나일 뿐 끊임없이 변화하는 맥락 안에서 일시적으로 형성된 자아라는 관점입니다. 우리가 상식에 입각해서 나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다양한 요소들이 일시적으로 결합된 것을 나로 착각한다는 것이지요. 셋째, 결국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고통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보편적이라는 관점입니다. 이러한 관점들을 갖게 되면 ‘나’라는 생각과 밀착되지 않고 탈동일시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들을 계속 훈련시키는 것이 ACT 프로그램의 핵심이더군요. 아까 말씀하신대로, 탈동일시나 메타인지19) 등이 지금까지의 명상과학에서 발견한 중요한 기제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 종교전통에서는 ‘엑스터시’라는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말해온 것인데 그것을 쉽게 공감될 수 있는 방식의 일상적인 용어로 풀고, 과학적 데이터로 뒷받침하여 이야기하고 있군요.
(미) 그렇죠.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이 최근 명상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명상과학 리포트에 그러한 중요 연구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리해 보았어요. 특히 최근에 굉장히 재미있는 연구가 나왔어요.20) 위스콘신 대학의 리처드 데이빗슨21)의 연구 팀인데요, 비디오 게임을 통한 자비 명상 수련과 공감 효과를 다룹니다. 최초로 디지털 과학기술을 명상에 연결한 것인데,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면서 공감능력이 향상된 것입니다. 최근에 네이처 지에도 실렸어요.
이런 연구들을 검토하면서, 지금까지 발견된 기제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22) 메타인지가 상위 요인입니다. 메타인지가 기반이 되었을 때 주의력 및 집중력 향상, 긍정성 함양 및 정서 조절, 현존(presence)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면 삶의 태도에 대한 인지·행동·정서·신체의 긍정적 전환이 일어나고 삶의 풍요와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서로 영향을 주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인지심리치료에서는 기제를 통해서만 접근하니까 너무 연구가 건조하고 효과적이지 못했어요. 한때는 마음챙김이 대부분의 명상과학 연구를 선도했어요. 그런데 10여년 전부터 스탠포드나 위스콘신 쪽에서는 마음챙김의 중요성도 인정하지만, 자비나 정서적 측면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어요. 그럼으로써 에머리 대학에서 티벳불교를 기반으로 CBCT23)라는 자비명상 프로그램이 개발되게 됩니다. 그리고 스탠포드대 자비와 이타심 연구 교육 센터(CCARE)24)에서 달라이 라마 스님의 통역을 담당하던 툽뗀 진빠25)가 주축이 되어 CCT26)라는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크리스틴 네프27)와 크리스 거머28)가 MSC29)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매우 빠르게 세계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타냐 싱어가 ReSource Project30)를 수행해서 여기에서도 매우 질높은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연구 편수는 적지만 굉장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영국의 폴 길버트31)가 기존의 인지 치료에서의 한계를 넘기 위해 자비에 관심을 가지고 CFT32)를 만들었지요.
카이스트에서는 자비명상의 일종인 HST33)를 만들었어요. 집중적으로 몸과 의식의 정서적인 측면들을 극대화하고, 동북아에서 요가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던 행법들이나 신체적 실천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결합했어요.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티벳불교나 상좌부불교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HST 선불교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집니다. 선불교는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지만, 선불교 측에서는 실제 현대과학적 기제로 접근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망상으로 치부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과학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불교에서도 자비행법들을 복원해서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선불교만의 강점,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강력하게 본질을 꿰뚫는 힘이 살아날 수 있다고 봅니다.
■ 명상의 해체와 재해석
흥미로운 것은, 마음챙김에 대한 기존 설명에 혼선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초기불교나 상좌부에서의 마음챙김 설명과, 선불교 또는 티벳불교(그중에서도 족첸 마하무드라의 영향을 받은 전통)에서의 설명이 굉장히 다릅니다. 그 차이를 분류하고 언어로 직접적으로 표현한 사람은 지금까지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버드에서 중관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불교학자 존 던(John D. Dunne)은 최근의 논문34)에서 마음챙김(mindfulness)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전통적인 마음챙김(classical mindfulness)이고, 다른 하나는 비이원적 마음챙김(non-dual mindfulness)입니다. 저는 그 설명이 너무나도 명쾌하다고 생각했어요. 선불교적인 마음챙김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동안은 언어가 발목을 잡아서 피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존 던이 비이원적 방식으로 해석 가능한 언어를 제공해준 셈이지요.
저는 그것을 현존명상이라는 말로 표현했어요. 그것은 마음챙김명상과 비슷하지만 족첸 마하무드라나 선불교 입장에서 마음챙김을 해석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저는 이러한 현존을 ‘온전함’(영어로는 authentic presence)이라고 번역했어요. 온전함이라는 것은 깊은 공의 세계와 드러난 현상 세계를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현존명상에서는 분별(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포함하면서, 지고선 쪽을 추구해가는 것을 온전함이라고 정의하기는 하지만, 실제 명상 행법에서 잘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동작으로 만들기에는 어렵고 추상화되기 쉽기 때문이지요.
오로지 마음챙김 하나만을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존 카밧진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니, 이 분은 숭산 스님35)의 제자였기에 선불교의 영향을 받았더군요. 그래서 그의 마음챙김을 분석적으로 살펴보니 수많은 개념들이 혼재하더군요. 중국에서는 한때 선 개념 안에 모든 것을 담아서 지고의 가치로 올려 두고 한 시대를 풍미했었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지금은 다시 개념을 정확하게 해체할 시기입니다. 그래야 창조적 재해석과 재구성이 가능하지요. 존 카밧진의 마음챙김 역시 지난 3-4년간 뜨거운 논쟁 속에서 해체되고 있습니다. Handbook of Mindfulness 등의 책에서 다양한 논의들이 쏟아지고 있지요. 오늘 우리는 명상과학을 연구하기 위한 최적의 시기에 있습니다. 명상을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치밀하게 분석해야만 종교가 가진 신비적 요소들, 디지털시대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들이 재해석되고 이 시대에 맞게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될 겁니다. 그러한 창조적 계기를 명상과학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지요.
미주
1) MCT(medium chain triglycerides): 포화지방산의 한 종류인 중쇄지방산으로, 코코넛 오일이나 버터, 치즈 등 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식품에 함유되어 있다. 일반 지방에 비해 쉽게 분해되고, 체내에 축적되지 않고 에너지로 소비되어 다이어트에 적합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2) 『최강의 식사: 인생을 바꾸는 실리콘밸리식 완전무결 2주 다이어트』, 데이브 아스프리 지음, 정세영 옮김, 앵글북스, 2017. (원서: Dave Asprey, The bulletproof Diet: Lose Up to a Pound a Day, Reclaim Energy and Focus, Upgrade Your Life, Rodale Books, 2017.)
3) 내수용감각(interoception): 신체의 내부 상태에 대한 감각. 몸의 항상성 유지와 자의식에 있어서 핵심적이다.
4) 바이오피드백(biofeedback): 다양한 생리적 기능을 도구를 이용하여 측정함으로써 생리 시스템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것을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하는 과정.
5) fMRI(func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뇌의 특정 영역이 사용되면 그 영역으로 향하는 혈류량이 증가한다는 사실, 뇌 혈류와 신경세포 활성화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혈류 변화를 감지하여 뇌 활동을 측정하는 기술.
6) 『2018 Start up 명상과학 리포트』,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2018, p.8.
7) NLP(Neuro-Linguistic Programming)는 리처드 반들러(Richard Bandler)와 존 그린더(John Grinder)에 의해 개발된 커뮤니케이션, 개인발달, 심리치료 기법이다. NLP는 신경학적 과정과 언어 그리고 경험(프로그래밍)을 통해 학습되는 행동 패턴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전제 하에, 그러한 연관성의 변화로 우울증, 틱장애, 공황장애 등을 치료할 수 있다고 본다.
8)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마음챙김 기반의 스트레스 경감법
9) Oxford Mindfulness Centre: 옥스퍼드대 정신의학과에 속한 마음챙김 센터는 2008년 이후로 마음챙김 연구와 훈련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http://oxfordmindfulness.org/
10) 마크 윌리엄스(J. Mark G. Williams): 옥스퍼드대의 정신과, 임상심리 교수
11) 진델 시걸(Zindel Segal): 토론토대 심리학 교수
12) MBCT(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마음챙김 기반의 인지 치료. 옥스포드 대학교 Mindfulness Centre에서 진델 시걸(Zindel Segal), 존 티즈데일(John Teasdale), 마크 윌리엄스(Mark Williams) 등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통증과 우울증 등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13) ecstasy의 어원은 그리스어 ἔκστασις(ékstasis = ex + stasis; '바깥에 서다')다.
14)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 1928-): 미국의 언어학자, 철학자, 사회비평가이며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15) ACT(Acceptance Commitment Therapy): 스티븐 헤이즈가 개발한 치료 프로그램. 불안, 우울증, 직무 스트레스 등에 효과가 있다.
16)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 자신이 겪는 문제와 자신의 존재를 분리함으로써 자기동일시로부터 탈피하는 것. 의식의 흐름과 의식 내용으로서의 자기를 구별함으로써 감정이나 생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17) 탈-자동화(deautomatization): 다이크만(Arthur J. Deikman)이 주창한 개념. 강렬한 감정이나 반복적인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면, 자각없이 자동화된 반응을 보이게 된다. 명상 등을 통해 지나친 자기동일시에서 벗어나 자신을 관찰하게 되면 지금까지 반복되던 자동화된 패턴을 의도적으로 조절하고 바꿀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탈자동화라고 부른다.
18) 스티븐 헤이즈(Steven C. Hayes): 네바다 대학 임상심리 교수
19) 메타인지; 상위인지(metacognition)는 자신의 인지나 사고에 관한 지식, 자신의 인지나 사고에 관한 조절을 뜻한다.
20) Kral, T. R. A., Stodola D. E., Birn R. M., ... & Davidson, R. J. (2018). Neural correlates of video game empathy training in adolescents: a randomized trial. npj Science of Learning, 3(13).
21) 리처드 데이비슨(Richard Davidson): 위스콘신-매디슨대학 심리학, 정신의학 교수.
22) 명상과학 리포트 20p.
23) CBCT(Cognitively-Based Compassion Training): 인지적 기반의 자비 훈련: 에모리 대학의 뗀진 네기가 개발한 자비 명상 프로그램. 우울증과 정서 조절에 효과가 있고 코르티솔 감소, 옥시토신 증가의 효과가 있음.
24) CCARE(Center for Compassion and Altruism Research and Education): 스탠포드 대학 자비와 이타심 연구 교육 센터 http://ccare.stanford.edu/
25) 툽텐 진빠(Thupten Jinpa Langri, 1958-): 1985년부터 달라이 라마의 주요 영어 통역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열 권 이상의 달라이 라마의 저술을 번역하기도 했다. Institute of Tibetan Classics를 세워 경전 번역 작업을 진행중이며, 불교와 과학의 창조적 대화를 위한 단체인 Mind and Life Institute의 이사로도 활동중이다.
26) CCT(Compassion Cultivation Training): 스탠포드 대학교의 CCARE에서 툽텐 진빠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스트레스 경감과 배려심 함양을 통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기르는 효과가 있다.
27)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 텍사스대 교육심리학과의 Human Development and Culture 조교수. 자기 자신에 대한 자비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음.
28) 크리스 거머(Chris Germer): 임상 심리학자이자 작가, 명상가이며 MSC의 공동 개발자.
29) MSC(Mindful Self-Compassion): 케임브릿지대 병원의 Center for Mindfulness and Compassion에서 크리스틴 네프와 크리스 거머가 공동 개발한 자기 자비 프로그램으로, 자아존중감과 정서 탄력성, 동기부여, 삶의 만족도 향상의 효과가 있다.
30) ReSource Project: 막스 플랑크 뇌인지연구소의 타냐 싱어가 추진하는 연구 프로그램으로, 공감 신경회로와 자비 신경회로를 구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31) 폴 길버트(Paul Gilbert): 영국의 임상심리학자, 더비대 교수. CFT의 개발자이며 명상과 자비에 대한 다수의 저술이 있다.
32) CFT(Compassion Focused Therapy): 더비셔 대학교의 Center for Compassion에서 폴 길버트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우울증, 정서조절, 수치심, 기분장애, 조현병 등에 효과가 있다.
33) HST(Heartsmile Training): 하트스마일명상은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미산 소장이 개발한 자비명상 프로그램이다.
34) John Dunne, Toward an understanding of non-dual mindfulness, Contemporary Buddhism, 2011, Vol.12(1), 71-88.
35) 숭산 스님(1927-2004): 1970년대부터 전세계적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선불교를 알렸다. 특히 전미 25개주에 25개의 선원을 설립했다. 특유의 짧고 강렬한 법문으로 유명하다.
| 미산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소장)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남방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하버드대학교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중앙승가대 교수를 역임했다. 현대인을 위한 자비명상 프로그램인 하트스마일명상(HST)를 개발했다. 저서로는 『초기경전강의』, 『행복』, 『자비』 등이 있다. |
| 성해영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라이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간의 종교 경험과 신비주의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와의 대담집인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명상가 한바다와의 대담집인 <궁극의 욕망을 찾아서>, 등의 저서가 있고 역서로는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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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명상과학 아고라를 앞두고 효자동의 아담한 복합 문화 공간 <울림과 퍼짐>에서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미산 소장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의 성해영 교수가 만났다. (이하 ‘미’와 ‘성’으로 약칭)
■ 커피를 마시며
(성) 소장님은 커피 안 드시나요?
(미) 물이면 됩니다. 저는 아침에 방탄커피를 마시고 왔어요.
(성) 방탄커피가 무슨 뜻이죠?
(미) 말 그대로 방탄(bulletin-proof) 커피인데요, 레시피를 말씀드리면 이해하실 수 있어요. 손수 내린 신선한 커피와 MCT오일1) 그리고 유기농 무염버터를 블렌더로 잘 섞어서 아침에 마시면 오후까지 포만감이 유지되면서 정신을 깨워주는 효과가 있거든요.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됩니다.
실리콘벨리에서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가 된 사업가 데이브 아스프리는 몸무게가 140kg에 육박하는 거구였지요. 서른 살 무렵 병원에서 지금의 몸 상태가 계속 된다면 조만간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할 정도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 됩니다. 위기감을 느낀 아스프리는 75만 달러가 넘는 비용을 투자하여 비만에 관한 전문가들을 모아 종합적 연구를 실행하고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지요. 그러면서 다이어트에 관한 중요한 발견들을 했습니다. 지방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신화를 깨뜨렸다는 것이 중요한 점 중 하나입니다. 몸에 바로 흡수되는 좋은 지방은 살이 되지 않고 오히려 지방을 분해한다는 것이죠. 오히려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포도당으로 바뀌고 지방으로 축적됩니다.
(성) 소장님이 말씀하시니 저도 꼭 해 봐야겠군요.
(미) 저도 200일정도만에 7kg가 빠졌어요. 지인의 소개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주변에 함께 하는 동료들이 생겼죠. 『최강의 식사』2)라는 책에 잘 소개되어 있어요. 책을 읽고 나면 설득이 될 수밖에 없어요. 지금도 꾸준히 실천 중인데, 무엇보다도 에너지를 충분히 쓰면서 몸은 부담스럽지 않게 되더라고요. 업무 효율이 올라가니 시간도 절약되고요. 스님들은 보통 탄수화물을 많이 드시고 고기를 먹지 않는데 살이 쪄요. 탄수화물이 주범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그것을 줄이고, 좋은 지방을 먹게 되었죠.
최근에 유행했던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사라는 것도 있었는데, 그건 부작용이 있어 많은 의사들이 경고하는 방식이에요. 방탄커피는 그 이후에 나온 개선된 방식입니다. 하지만 실천하려면 책을 보고 과학적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몸을 관찰하면서 양을 조절해야 해요.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실천은 사실 명상 수행과 다르지 않아요. 끊임없이 몸과 마음과 의식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지요.
■ 명상과 몸
(성) 소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좋아지신 비법이 있었군요(웃음). 식이요법으로 몸을 만들어가는 것이 명상의 과정과 같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통찰이네요.
(미) 명상의 가장 직접적인 출발점은 몸을 살피는 것이에요. 우리는 보통 몸의 바깥만을 살피지만, 명상은 몸 안을 살피죠. 그것을 뇌과학에서는 내수용감각3)이라고 부릅니다. 내장들과 같은 신체 내부의 생리학적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성) 바이오피드백4)의 전단계로서 이해할 수 있겠군요.
(미) 명상에서 내수용감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최근에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지요. 우리는 오감을 통해 외부 세계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데, 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 몸이 사실은 말을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해 결국 심각한 질병을 앓는 일까지 생기는 것이겠네요.
(미) 그래서 몸을 명상의 첫 번째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또한 몸의 현상 중에서 의식과 몸의 느낌을 연결해 주는 것은 호흡입니다. 따라서 명상의 몸 관찰에서는 대부분 호흡 관찰이 우선시되는 것이죠. 호흡을 관찰하다 보면 의식을 들여다보는 내적 역량과 내수용감각이 함께 발달하여 알아차림(awareness), 마음챙김(mindfulness) 능력이 증가하게 되지요.
몸에 있어서 먹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좋은 명상 센터에 가면 음식이 정말 영양학적으로 골고루 구성되어 있고, 짜거나 매운 자극적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최근 한 명상센터에서 5박6일간의 지도자 양성 코스가 있었는데, 그곳의 식사가 너무도 훌륭했어요. 그런 좋은 음식은 정서적 안정과 더불어, 자신의 의식을 명료하고 깊게 자각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래서 명상의 시작은 먹는 것, 몸과 중요한 관련이 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최면과 명상
(성) 그러한 점에서 보면 최면도 몸과 중요한 관련이 있습니다. 최면의 기본 원리 중 하나는 의식을 깊은 마음의 상태로 유도하기 위해 호흡을 천천히 하면서 몸을 이완시키는 것입니다. 직접 그렇게 몸을 이완시켜서 힘을 빼고 무방비상태로 긴장을 풀어놓게 되면, 역설적으로 자신이 몸의 어디에 과한 힘을 주거나 불편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몸의 소리를 듣기 위해 몸을 이완해야 하듯, 명상에서도 생각에 사로잡힌 마음을 풀어놓는 것이 기본이겠지요. 최면의 원리를 따라 이완을 해 보면 몸의 어느 부위에 왜 불필요한 힘과 긴장이 들어 있었는지 알아차리게 되고, 평소에는 전혀 모르던 것을 빠르게 알아차리게 되더군요.
(미) 감각이 깨어나면 의식과 연결됩니다. 감각이 깨어나지 않으면 의식과의 연결이 막혀 있기에 깊은 의식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중에서도 최면은 무의식과 연결되어야 효과가 나죠.
(성) 맞습니다. 그래서 최면에서는 세팅도 중요하고, 누가 최면을 거는지도 매우 중요하죠. 그런 점에서 최면도 과학이라는 영역에 반 쯤 걸쳐 있으나, 명상처럼 측정하기 힘든 인간의 마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이 많이 있는 분야인 것 같습니다. 최면에 잘 들어가는 사람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의식의 심층으로 쉽게 들어갑니다. 그게 한 편으로는 위험성을 내포하기도 하죠.
(미) 최면이 특정한 임상현장에서 사용되지만, 동시에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이유는 의식에 대한 전체적인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가 없이 너무 강력한 체험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또한 수동적으로 경험된 후 인지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성) 그 점에서 명상이라는 것도 인간의 마음, 존재의 심층으로 들어가는 굉장히 중요한 테크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은 사전에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특정한 현상이 발생하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관한 체계적인 논의들을 갖추고 있어서 설령 그 과정에서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종교적 경험이나 심리적 현상이 생기더라도 개인을 보호해줄 수 있는 틀거리, 안전장치, 시스템이 있습니다. 제도화된 종교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틀은 명상의 장단점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종교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최면이나, 인간 마음의 깊숙한 곳을 강력하게 터뜨려 놀라운 정도의 엑스터시나 트랜스 상태를 유도하는 기술들이 악용되는 사례들이 있기에, 인간의 마음에 심층적으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양날의 칼처럼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 4차산업혁명과 명상과학
(미) 서양에서는 지난 40여 년간 마음챙김(mindfulness)을 중심으로 동서양 종교가 가진 소중한 정신문화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면서, 아까 말씀하신 전체적인 틀이나 원리 등 종교에서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놓은 것을 활용해서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트레스 경감/치유 프로그램으로 일반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기반에는 철저한 과학적 검증이 있었습니다. 특히 뇌신경과학의 발달로 fMRI5)를 촬영하고 뇌파나 호르몬 검사를 실시해서 현재 어떤 생리적 변화가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밝히는 작업이 병행되었기에 지금처럼 명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편화된 것입니다.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는 그러한 부분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한국에서도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도 대중화하는 심화·확산의 일을 하려 합니다. (재)플라톤 아카데미 역시 인문학의 심화·확산을 모토로 하고 있지 않나요? 지금은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만남이 매우 중요한 시대입니다. 과학기술이 놀라운 방식으로 진보하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교차점이 바로 인간의 마음과 뇌라는 자각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시작되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4차산업혁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미 가상세계에서 중요한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을 통해 더 거대한 일들이 펼쳐질 겁니다. 그러한 변화들이 디지털 세계에서 아날로그 세계로, 몸과 마음과 삶 속으로 어떻게 들어오게 되는지, 그러한 복잡한 관계들을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흐름에서 중심은 언제나 인간입니다. 인간의 의식·몸·정서에 대한 보다 정확한 연구가 필요하죠. 흥미롭게도 사실 명상은 오랜 전부터 몸과 우리의 느낌과 정서를 연구했고, 그것을 통해 깊은 의식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체계화해 왔지요. 그래서 지금이 명상과 과학기술이 만날 수 있는 매우 좋은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명상과학 리포트 발간
(미) 최근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에서 『2018 Start up 명상과학 리포트』가 발간되었어요. 명상과학 연구소의 설립 목적과 연구 방향들을 정리한 것이죠. 명상과학이라는 것은 새로운 융·복합학문입니다. 저는 그 구도를 이렇게 그려 보았어요. 행복·진리·사랑이라는 큰 범주의 가치 추구를 명상과 과학 모두가 공유하고 있지요. 종교에서는 명상을 통해 이러한 가치를 추구해왔어요. 과학 역시 이 범주 안에서 진리를 탐구하고 나누면서 인간이 좀 더 행복해지기를 추구해 왔지요. 그런데 근래에 둘 사이에서 만나는 지점이 생겨난 것이죠. 이것을 명상과학이라 부르자는 것입니다. 명상과학 리포트에서는 명상과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명상과학은 명상의 효과와 기전을 뇌신경 및 인지심리 과학적 방법을 통해 규명하려는 융·복합적 새로운 학문이다. 동서양에서 오랫동안 전승 및 실천되어 온 명상의 정신적·신체적 효과와 기전을 뇌파, 호르몬 변화, fMRI, 심리 측정 도구 등의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행복, 진리, 사랑의 덕목을 탐구하고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6)
■ 명상과 인지심리학
(성) 다양한 실험장비를 통해 뇌의 물리적 현상을 탐구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과학적 접근이 한 편에 있고, 다른 한 편에는 자기성찰과 반성, 의미 부여의 해석학적 체계로서의 인문학이 있습니다. 그 중간에는 1990-2000년대에 등장한 NLP7) 등을 포함하는 인지심리학이 존재하지요. 인간이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바라보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뇌의 물질적인 변화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삶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최근에 굉장히 많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인지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언어체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언어체계라는 것은 사태나 사물이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이며, 관점과 세계관 자체가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기에 언어로 구성된 세계관이나 관점을 바꾸면 실제 인간의 몸과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러한 몸과 마음의 변화는 다시 세계관이나 언어체계의 변화를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 점에서 인지심리학자들이 인지의 방식과 관련하여 마음챙김 논의를 많이 하더군요. 초기의 인지심리학이 장·단기 기억 연구 등의 주제를 엄밀한 실험과학이나 자연과학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전에 다루지 않았던 종교적 지혜나 명상이 가르쳐 준 통찰 같은 주제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챙김이 자신의 바깥에서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언어체계나 세계관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상위 인지 자체가 인간의 삶의 많은 문제들(우울증 등)을 인지치료적 관점에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미) 그렇게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고, 심리학계 내에서도 끊임없이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한 때는 행동주의 심리치료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인지심리학이나 실존주의 심리치료 등이 발달했지요. 그 뒤에 존 카밧진이 MBSR8)을 임상적으로 실험하면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자 인지심리학자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죠. 특히 옥스퍼드의 마음챙김 센터9)에는 마크 윌리엄스10)나, 캐나다의 진델11) 같은 인지심리학의 대가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이 마음챙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인지심리학적 연구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인지적으로 수정하고 자각했는데도 환자들의 우울증이 재발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존 카밧진을 중심으로 마음챙김울 기반으로 한 인지치료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문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 MBCT12)입니다. MBCT가 효과를 나타냈던 까닭은 인지가 고쳐져서 치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지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의식이 확장되고 깊어지고, 거기서 인지적 변화 뿐 아니라 정서적 변화까지 일어나서 근본적 치료가 된 것이지요. 그러한 기제들이 작동하면서 본질적 치료가 일어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발견되고 검증되어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었죠. 이제 MBCT는 영국에서는 보험료 지급이 될 정도로 공식적으로 검증된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성) 그러한 대목에서 기존의 인지 체계나 세계관을 수정하거나, 사태나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스템 자체에서 벗어나거나, 고정불변의 체계에서 벗어나는 것, 다르게 표현하자면 마음챙김에서 말하듯이 있는 그대로 보고 수용하려는 태도 등은 명상이 이야기하고 있는 (또는 최면이나 다른 여러 가지 의식의 기법들이 말하고 있는) 인간의 자기규정이나 고정불변하는 자기 정체성의 시스템으로 여겼던 것으로부터 무슨 이유에서든 벗어나게 되는 것과 유사합니다. 여기서는 ‘확장’이라는 개념이 더 맞을 것 같아요. 자기 정체성의 ‘확장’을 연습하는 것이지요. 사실 마음챙김은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곧바로 반응해서 감정에 휩싸임으로써 기존의 인지 체계를 더욱 강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호흡 조절 등의 방법을 통해 나의 일, 나의 사건, 내가 처한 상황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내가 아닌 것처럼 지켜보게 하는 탈-동일시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바라봄’을 종교학적 관점에서 해석해보면, 그것은 일종의 엑스터시(ecstasy)가 아닐까 싶어요. 스스로 자기 바깥에 선다는 희랍어의 본래 의미에서 그러하지요.13) 우리는 보통 엑스터시를 정서적으로 과열된 망아경이나 황홀경처럼 감정적인 요인이 과도한 것으로 바라보면서 엑스터시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지만, 원래의 엑스터시의 개념 자체는 실제로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자기를 지켜본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럴 경우 그렇게 벗어나서 지켜보는 자는 누구냐는 궁극적 질문이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이 무한하게 발생합니다만, 적어도 마치 자기를 자기가 아닌 것처럼 밖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인지체계를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구원의 씨앗'처럼 비춰지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음챙김과 명상이 뇌인지체계나 감정적인 측면들을 새로운 인지체계나 확장된 인지체계로 재구성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최근 논의되는 것 같아요.
■ 오늘날의 명상과학 연구와 프로그램들
(미) 인지적 접근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는 언어체계 분석을 통해 종교의 체계를 빌리지 않고, 촘스키14)의 언어이론 등을 이용한 독자적인 분석으로 만든 임상 프로그램인 ACT15)가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아주 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으며 탈-동일시16)에 대한 정연한 이론들, 다양한 연습들을 통해 문제를 벗어나게 합니다.
(성) 탈-자동화17)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자동화된 인지체계나 감정체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지요.
(미) 명상과학 리포트에 정리되어 있는데요, ACT는 스티븐 헤이즈18)가 만들었습니다. ACT는 MBSR, MBCT와 함께 임상 현장에서 아주 영향력이 큰 기법입니다. 이것을 분석해보니 매우 체계적이더군요. 불교 전공자로서 바라보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존재의 현상을 보는 세 가지 관점이 다 녹아 있더군요. 첫째, 세상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없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관점입니다. 둘째, 거기에 나라는 실체가 없어서 나는 과정에서의 나일 뿐 끊임없이 변화하는 맥락 안에서 일시적으로 형성된 자아라는 관점입니다. 우리가 상식에 입각해서 나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다양한 요소들이 일시적으로 결합된 것을 나로 착각한다는 것이지요. 셋째, 결국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고통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보편적이라는 관점입니다. 이러한 관점들을 갖게 되면 ‘나’라는 생각과 밀착되지 않고 탈동일시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들을 계속 훈련시키는 것이 ACT 프로그램의 핵심이더군요. 아까 말씀하신대로, 탈동일시나 메타인지19) 등이 지금까지의 명상과학에서 발견한 중요한 기제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 종교전통에서는 ‘엑스터시’라는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말해온 것인데 그것을 쉽게 공감될 수 있는 방식의 일상적인 용어로 풀고, 과학적 데이터로 뒷받침하여 이야기하고 있군요.
(미) 그렇죠.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이 최근 명상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명상과학 리포트에 그러한 중요 연구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리해 보았어요. 특히 최근에 굉장히 재미있는 연구가 나왔어요.20) 위스콘신 대학의 리처드 데이빗슨21)의 연구 팀인데요, 비디오 게임을 통한 자비 명상 수련과 공감 효과를 다룹니다. 최초로 디지털 과학기술을 명상에 연결한 것인데,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면서 공감능력이 향상된 것입니다. 최근에 네이처 지에도 실렸어요.
이런 연구들을 검토하면서, 지금까지 발견된 기제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22) 메타인지가 상위 요인입니다. 메타인지가 기반이 되었을 때 주의력 및 집중력 향상, 긍정성 함양 및 정서 조절, 현존(presence)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면 삶의 태도에 대한 인지·행동·정서·신체의 긍정적 전환이 일어나고 삶의 풍요와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서로 영향을 주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인지심리치료에서는 기제를 통해서만 접근하니까 너무 연구가 건조하고 효과적이지 못했어요. 한때는 마음챙김이 대부분의 명상과학 연구를 선도했어요. 그런데 10여년 전부터 스탠포드나 위스콘신 쪽에서는 마음챙김의 중요성도 인정하지만, 자비나 정서적 측면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어요. 그럼으로써 에머리 대학에서 티벳불교를 기반으로 CBCT23)라는 자비명상 프로그램이 개발되게 됩니다. 그리고 스탠포드대 자비와 이타심 연구 교육 센터(CCARE)24)에서 달라이 라마 스님의 통역을 담당하던 툽뗀 진빠25)가 주축이 되어 CCT26)라는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크리스틴 네프27)와 크리스 거머28)가 MSC29)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매우 빠르게 세계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타냐 싱어가 ReSource Project30)를 수행해서 여기에서도 매우 질높은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연구 편수는 적지만 굉장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영국의 폴 길버트31)가 기존의 인지 치료에서의 한계를 넘기 위해 자비에 관심을 가지고 CFT32)를 만들었지요.
카이스트에서는 자비명상의 일종인 HST33)를 만들었어요. 집중적으로 몸과 의식의 정서적인 측면들을 극대화하고, 동북아에서 요가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던 행법들이나 신체적 실천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결합했어요.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티벳불교나 상좌부불교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HST 선불교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집니다. 선불교는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지만, 선불교 측에서는 실제 현대과학적 기제로 접근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망상으로 치부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과학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불교에서도 자비행법들을 복원해서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선불교만의 강점,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강력하게 본질을 꿰뚫는 힘이 살아날 수 있다고 봅니다.
■ 명상의 해체와 재해석
흥미로운 것은, 마음챙김에 대한 기존 설명에 혼선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초기불교나 상좌부에서의 마음챙김 설명과, 선불교 또는 티벳불교(그중에서도 족첸 마하무드라의 영향을 받은 전통)에서의 설명이 굉장히 다릅니다. 그 차이를 분류하고 언어로 직접적으로 표현한 사람은 지금까지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버드에서 중관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불교학자 존 던(John D. Dunne)은 최근의 논문34)에서 마음챙김(mindfulness)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전통적인 마음챙김(classical mindfulness)이고, 다른 하나는 비이원적 마음챙김(non-dual mindfulness)입니다. 저는 그 설명이 너무나도 명쾌하다고 생각했어요. 선불교적인 마음챙김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동안은 언어가 발목을 잡아서 피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존 던이 비이원적 방식으로 해석 가능한 언어를 제공해준 셈이지요.
저는 그것을 현존명상이라는 말로 표현했어요. 그것은 마음챙김명상과 비슷하지만 족첸 마하무드라나 선불교 입장에서 마음챙김을 해석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저는 이러한 현존을 ‘온전함’(영어로는 authentic presence)이라고 번역했어요. 온전함이라는 것은 깊은 공의 세계와 드러난 현상 세계를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현존명상에서는 분별(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포함하면서, 지고선 쪽을 추구해가는 것을 온전함이라고 정의하기는 하지만, 실제 명상 행법에서 잘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동작으로 만들기에는 어렵고 추상화되기 쉽기 때문이지요.
오로지 마음챙김 하나만을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존 카밧진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니, 이 분은 숭산 스님35)의 제자였기에 선불교의 영향을 받았더군요. 그래서 그의 마음챙김을 분석적으로 살펴보니 수많은 개념들이 혼재하더군요. 중국에서는 한때 선 개념 안에 모든 것을 담아서 지고의 가치로 올려 두고 한 시대를 풍미했었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지금은 다시 개념을 정확하게 해체할 시기입니다. 그래야 창조적 재해석과 재구성이 가능하지요. 존 카밧진의 마음챙김 역시 지난 3-4년간 뜨거운 논쟁 속에서 해체되고 있습니다. Handbook of Mindfulness 등의 책에서 다양한 논의들이 쏟아지고 있지요. 오늘 우리는 명상과학을 연구하기 위한 최적의 시기에 있습니다. 명상을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치밀하게 분석해야만 종교가 가진 신비적 요소들, 디지털시대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들이 재해석되고 이 시대에 맞게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될 겁니다. 그러한 창조적 계기를 명상과학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지요.
미주
1) MCT(medium chain triglycerides): 포화지방산의 한 종류인 중쇄지방산으로, 코코넛 오일이나 버터, 치즈 등 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식품에 함유되어 있다. 일반 지방에 비해 쉽게 분해되고, 체내에 축적되지 않고 에너지로 소비되어 다이어트에 적합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2) 『최강의 식사: 인생을 바꾸는 실리콘밸리식 완전무결 2주 다이어트』, 데이브 아스프리 지음, 정세영 옮김, 앵글북스, 2017. (원서: Dave Asprey, The bulletproof Diet: Lose Up to a Pound a Day, Reclaim Energy and Focus, Upgrade Your Life, Rodale Books, 2017.)
3) 내수용감각(interoception): 신체의 내부 상태에 대한 감각. 몸의 항상성 유지와 자의식에 있어서 핵심적이다.
4) 바이오피드백(biofeedback): 다양한 생리적 기능을 도구를 이용하여 측정함으로써 생리 시스템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것을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하는 과정.
5) fMRI(func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뇌의 특정 영역이 사용되면 그 영역으로 향하는 혈류량이 증가한다는 사실, 뇌 혈류와 신경세포 활성화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혈류 변화를 감지하여 뇌 활동을 측정하는 기술.
6) 『2018 Start up 명상과학 리포트』,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2018, p.8.
7) NLP(Neuro-Linguistic Programming)는 리처드 반들러(Richard Bandler)와 존 그린더(John Grinder)에 의해 개발된 커뮤니케이션, 개인발달, 심리치료 기법이다. NLP는 신경학적 과정과 언어 그리고 경험(프로그래밍)을 통해 학습되는 행동 패턴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전제 하에, 그러한 연관성의 변화로 우울증, 틱장애, 공황장애 등을 치료할 수 있다고 본다.
8)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마음챙김 기반의 스트레스 경감법
9) Oxford Mindfulness Centre: 옥스퍼드대 정신의학과에 속한 마음챙김 센터는 2008년 이후로 마음챙김 연구와 훈련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http://oxfordmindfulness.org/
10) 마크 윌리엄스(J. Mark G. Williams): 옥스퍼드대의 정신과, 임상심리 교수
11) 진델 시걸(Zindel Segal): 토론토대 심리학 교수
12) MBCT(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마음챙김 기반의 인지 치료. 옥스포드 대학교 Mindfulness Centre에서 진델 시걸(Zindel Segal), 존 티즈데일(John Teasdale), 마크 윌리엄스(Mark Williams) 등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통증과 우울증 등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13) ecstasy의 어원은 그리스어 ἔκστασις(ékstasis = ex + stasis; '바깥에 서다')다.
14)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 1928-): 미국의 언어학자, 철학자, 사회비평가이며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15) ACT(Acceptance Commitment Therapy): 스티븐 헤이즈가 개발한 치료 프로그램. 불안, 우울증, 직무 스트레스 등에 효과가 있다.
16)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 자신이 겪는 문제와 자신의 존재를 분리함으로써 자기동일시로부터 탈피하는 것. 의식의 흐름과 의식 내용으로서의 자기를 구별함으로써 감정이나 생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17) 탈-자동화(deautomatization): 다이크만(Arthur J. Deikman)이 주창한 개념. 강렬한 감정이나 반복적인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면, 자각없이 자동화된 반응을 보이게 된다. 명상 등을 통해 지나친 자기동일시에서 벗어나 자신을 관찰하게 되면 지금까지 반복되던 자동화된 패턴을 의도적으로 조절하고 바꿀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탈자동화라고 부른다.
18) 스티븐 헤이즈(Steven C. Hayes): 네바다 대학 임상심리 교수
19) 메타인지; 상위인지(metacognition)는 자신의 인지나 사고에 관한 지식, 자신의 인지나 사고에 관한 조절을 뜻한다.
20) Kral, T. R. A., Stodola D. E., Birn R. M., ... & Davidson, R. J. (2018). Neural correlates of video game empathy training in adolescents: a randomized trial. npj Science of Learning, 3(13).
21) 리처드 데이비슨(Richard Davidson): 위스콘신-매디슨대학 심리학, 정신의학 교수.
22) 명상과학 리포트 20p.
23) CBCT(Cognitively-Based Compassion Training): 인지적 기반의 자비 훈련: 에모리 대학의 뗀진 네기가 개발한 자비 명상 프로그램. 우울증과 정서 조절에 효과가 있고 코르티솔 감소, 옥시토신 증가의 효과가 있음.
24) CCARE(Center for Compassion and Altruism Research and Education): 스탠포드 대학 자비와 이타심 연구 교육 센터 http://ccare.stanford.edu/
25) 툽텐 진빠(Thupten Jinpa Langri, 1958-): 1985년부터 달라이 라마의 주요 영어 통역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열 권 이상의 달라이 라마의 저술을 번역하기도 했다. Institute of Tibetan Classics를 세워 경전 번역 작업을 진행중이며, 불교와 과학의 창조적 대화를 위한 단체인 Mind and Life Institute의 이사로도 활동중이다.
26) CCT(Compassion Cultivation Training): 스탠포드 대학교의 CCARE에서 툽텐 진빠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스트레스 경감과 배려심 함양을 통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기르는 효과가 있다.
27)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 텍사스대 교육심리학과의 Human Development and Culture 조교수. 자기 자신에 대한 자비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음.
28) 크리스 거머(Chris Germer): 임상 심리학자이자 작가, 명상가이며 MSC의 공동 개발자.
29) MSC(Mindful Self-Compassion): 케임브릿지대 병원의 Center for Mindfulness and Compassion에서 크리스틴 네프와 크리스 거머가 공동 개발한 자기 자비 프로그램으로, 자아존중감과 정서 탄력성, 동기부여, 삶의 만족도 향상의 효과가 있다.
30) ReSource Project: 막스 플랑크 뇌인지연구소의 타냐 싱어가 추진하는 연구 프로그램으로, 공감 신경회로와 자비 신경회로를 구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31) 폴 길버트(Paul Gilbert): 영국의 임상심리학자, 더비대 교수. CFT의 개발자이며 명상과 자비에 대한 다수의 저술이 있다.
32) CFT(Compassion Focused Therapy): 더비셔 대학교의 Center for Compassion에서 폴 길버트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우울증, 정서조절, 수치심, 기분장애, 조현병 등에 효과가 있다.
33) HST(Heartsmile Training): 하트스마일명상은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미산 소장이 개발한 자비명상 프로그램이다.
34) John Dunne, Toward an understanding of non-dual mindfulness, Contemporary Buddhism, 2011, Vol.12(1), 71-88.
35) 숭산 스님(1927-2004): 1970년대부터 전세계적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선불교를 알렸다. 특히 전미 25개주에 25개의 선원을 설립했다. 특유의 짧고 강렬한 법문으로 유명하다.
미산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소장)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남방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하버드대학교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중앙승가대 교수를 역임했다. 현대인을 위한 자비명상 프로그램인 하트스마일명상(HST)를 개발했다. 저서로는 『초기경전강의』, 『행복』, 『자비』 등이 있다.
성해영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라이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간의 종교 경험과 신비주의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와의 대담집인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명상가 한바다와의 대담집인 <궁극의 욕망을 찾아서>, 등의 저서가 있고 역서로는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이 있다.